벌거벗은 임금님
언제부터인가 어른들은 동화를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권선징악’으로 보기 보다는 가난한데 아이만 많이 낳은 능력없는 캐릭터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화제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도 남자 주인공의 동화 재해석 이야기가 나온다. ‘인어공주’는 인류 최초의 세컨드 동화, ‘백설공주’는 사회지도층인 여자가 소외계층인 일곱난장이를 어장관리하다 사회지도층 키스 한방에 난장이를 버리고 냅다 튄 이야기라고 보았다. 또한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사회지도층인 여자가 잠만 자다 사회적 이슈가 되서 사회지도층을 만난 이야기이며, 역시 사람은 뭐 하나만 꾸준히 하면 된다는 교훈을 준다고 해석했다.
요즘 이슈가 되는 일들 몇 가지를 접하면서 나는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떠올려 본다. 왕은 정말 자신이 벌거벗은 줄 몰랐던 것일까? 백성들은 왜 어린아이의 외침이 있기까지 그 상황에 동조했을까? 한국에 있을 때, 관심있게 보던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이다. 어린 아이들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눈여겨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의 결말은 늘 ‘우리 부모가 달라졌어요!’가 된다. 어른의 부족함과 잘못된 양육방식이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교육방송에서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처음 교사들은 카메라에 담겨진 자신들의 모습에 놀라고 변명하고 위축된다. 전문가들의 비판이 오가고 눈물이 쏟아진다. 그리고 이렇게 언론에 노출된 상황을 후회한다. 그러나 그들은 인정하고, 노력하고 결국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늘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그런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그들의 부족하고 잘못된 모습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이것은 참 대단한 용기이다. 환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때론 환부를 드러내기 싫을 때도 있지만 숨길수록 병은 깊어간다. 더 심각해지기 전에 알려야 치료 받을 수 있다.
지난 달, 전세계에서 가장 큰 개신교인을 가진 교회 목사가 같은 교회 29명의 장로들에 의해서 고소당한 사건이 있었다. 주된 것은 공금횡령에 관한 것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목동에 있는 대형 교회 목사 또한 고소를 당했다. 교회 헌금 중 32억을 개인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동화 속 임금님은 어리석은 캐릭터로 그려진다. 부끄러워 도망칠 때는 순진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등장하는 벌거벗은 주인공들은 참으로 영악해 보인다. 자신의 지위와 힘을 이용해 군중들의 입을 막으려고 한다. 권력에 동조하는 이들도 보인다. 모함이라며 이들을 옹호하기도 한다.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는 역사 속에도 존재했다. 옛날 진나라의 조고라는 사람이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했다. 조고는 정권을 잡은 후에 ‘사슴’이라고 바르게 말한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여 버렸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그러나 천하(天下)는 오히려 혼란에 빠졌다. 각처에서 진나라 타도의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누가 사슴을 보고 말이라 하는가? 벌거벗은 임금님 놀이에 군중은 결국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