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

2011-09-01     김현주 편집국장

 오세훈 서울시장이 8ㆍ24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이틀 만에 결국 사퇴했다. 이번 주민투표의 과정을 보면서 아직 한국은 민주주의의 길을 걷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요지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오세훈 서울시장은 재정 형편에 맞게 복지를 해야 한다는 단계급식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공교육에서는 부모의 경제적 형편과 상관없이 보편적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전면급식을 주장했었다. 전면급식을 해야 할 경우 서울시 재정에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이에 오세훈 서울 시장은 자신의 직책을 걸고 주민투표를 실시했지만 실패했다. 이 실패 뒤에는 주민투표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불참 운동을 펼쳐온 곽노현 교육감이 있었다.

 서울시 남부교육청은 주민투표 즈음에 교복 공동 구매활성화 설명회를 개최한다는 공문을 발송하여 학부모와 각급 학교 교사들을 참석시켜 교복얘기는 안하고, 투표하지 말라는 얘기를 했다. 또, 교육감은 투표 전날과 당일 강원도 평창에서 ‘2011 서울 창의경영 학교장 포럼’을 개최한다며 초·중·고교 교장 259명과 장학사 등 270명을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불참을 권고하는 이메일을 교사와 학부모, 학원 관계자 등 24만 명에게 대량으로 발송하여 선거관리위원회가 검찰에 고발했다. 그는 대놓고 투표 거부운동을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8월25일 미디어 리서치에 의뢰해 서울 시민을 상대로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 결과,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야당이 벌인 투표 거부 운동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4.0%로 ‘공감한다’(21.2%)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주민투표법 24조에는 주민 투표가 부결 되었을 때는 찬성 반대 모두 부결된 것으로 본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곽 교육감이 자기들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도 의기 양양해 있던 곽 교육감은 지금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곽 교육감은 지난해 자신과 함께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출마했던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후보 단일화를 위해 돈을 준 혐의다. 검찰은 박 교수를 체포해 후보사퇴 대가로 7억 원을 받기로 했고 그 가운데 2억 원을 지난 2 ~ 4월에 건네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지난해 5·19 후보단일화 때‘민주진보진영의 중재와 박 교수의 결단’이 만들어냈다던 그 역전극 드라마가 실은 암거래를 위장한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곽 교육감은 이번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법으로부터 올바름을 배웠고, 교육으로부터 정직을 배웠다”며 뜬금없이‘정직’타령을 하다가 “어려운 처지를 외면할 수 없어 선의(善意)의 지원을 했을 뿐”이라고 돈 준 걸 합리화했다. 후보 매수를 통해 교육감 자리를 거머쥐었음에도 곽 교육감은 지난해 7·1 취임사에서 떳떳하게‘교육혁명의 길’을 외쳤었다. 다시 읽어보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곽 교육감은 8·24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 오세훈 시장에 맞선 인물이라는 점에서 투표 결과의 의미조차 무색하게 만들어 놓았다. 국민의 냉엄한 판단은 이미 내려졌고, 즉각 자진 사퇴하는 것밖에 없다. 사실 사퇴로도 부족하다. 서울시 교육감은 한 해 6조원이 넘는 예산을 다루고 교원 5만5000여명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수도 교육의 수장이다. 검찰은 문제의 2억 원 외에도 그 외의 돈은 없는지, 출처까지 포함해 철저히 수사해 위선의 뿌리를 밝혀내야 한다. 세계적으로 칭찬받는 한국의 교육 현실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비록 주민투표 결과에서는 곽 교육감이 이겼지만 오ㆍ곽 두 사람만을 놓고 볼 때 곽이 승자는 아니다. 주민투표의 승자는 분명 곽노현이지만 그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국민의 신망을 잃어버렸다. 반면 오세훈은 졌지만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작은 싸움은 졌지만 큰 싸움은 오세훈이 이긴 모양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더니 정말 그렇다. ‘회남자(淮南子)’에 새옹지마(塞翁之馬) 이야기가 나온다. 북쪽 국경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그가 기르는 말이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이게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며 낙심하지 않았다. 몇 달 뒤 도망친 말이 오랑캐의 말과 함께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축하했다. 노인은   “이게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라며 기뻐하지 않았다. 어느 날 노인의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이게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며 태연했다. 얼마 후 오랑캐들이 쳐들어오자 멀쩡한 마을 장정들은 싸움터에 나가 모두 죽었으나 노인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여서 무사했다.  항상 좋은 일만, 항상 나쁜 일만 계속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 곧 좋은 일이 생길 조짐이기 때문이다.

 요즘 참 어렵다. 한 두 식당을 제외하고는 더 그렇다. 우리 한인사회 역사를 함께 써왔던 세종관 식당도 지난주 문을 닫았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제대로 손 한번 못쓰고 그냥 주저앉았다. 지난 세월이 너무 아까워 주변 사람들도 절로 한숨을 짓는다. 다른 식당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좋은 날이 꼭 올 것이라는 희망만은 버리지 말길 바란다. 힘내자, 인간만사 새옹지마가 아닌가.    <편집국장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