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적

2011-08-25     김현주 편집국장

 살면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이 맞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만나서 밥도 먹고, 수다를 떨다가도 뭔가 하나가 뒤틀리면 철천지 원수가 되는 것을 우린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때려죽일 듯이 미워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 사람에 대해 험담을 하고, 미운 사람의 주변까지 미워하다가도 자신에게 조금만 이익이 된다 싶으면 바로 절친이 되어버리는 것도 자주 본다. 주위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로 말이다.

 요즘 세계는 리비아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리비아 반군은 드디어 카다피의 42년 철권통치를 종식시켰다. 지난 6개월간 목숨을 걸고 투쟁해온 리비아 반군은 22일 무아마르 카다피 시대의 종말을 공식적으로 고했다. 전세계가 공격을 퍼부어도 꿈쩍도 않고 견뎌온 카다피가 결국 자국민에게 끌려 내려가게 됐다. 이런 카다피의 끝을 지켜보던 세계 각국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열심히 계산을 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몇 일 전 한국 외교부는 무너진 카다피 정권을 더욱 확실하게 무너뜨리기 위한 결정을 내렸다. 리비아 반군, 과도정부 위원회(NTC)와의 접촉을 늘리고 지원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반군에 대해 100만 달러를 지원하고 필요할 경우 정부 고위급 인사를 직접 파견한다는 구체적인 내용도 나오고 있다. 카다피 정권을 확실하게 버리겠다는 의지다. 비록 지금은 버림을 받고 있는 카디피이지만, 한 때 그는 한국 경제 발전의 은인이기도 하다.

 1970년대 한국경제, 특히 건설업에 종사한 사람들에게는 '은인'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 특히 리비아 하면 떠오르는 건설사로는 동아, 대우 건설을 꼽을 수 있다. 1977년 한국 건설업체가 처음 리비아에 진출한 이후 현재까지 한국 건설업계가 리비아에서 수주한 건설 프로젝트만 해도 366억 달러나 된다. 최원석 전 회장의 동아건설은 1984년 리비아 대수로 공사 입찰권을 따내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사하라 사막지하에서 뽑아낸 물을 리비아 북부 벵가지와 시르테까지 보내는 총 1874km의 인공수로를 건설하는 역사적인 프로젝트가 동아시아의 잘 알려지지도 않은 건설사에 주어졌기 때문이다. 1984년 당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950억 달러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한해 국민생산의 3% 가량을 공사 한 건의 수주로 달성해 버린 것이다.

 대우건설도 리비아에서 100억 달러 이상 공사를 수주해내면서 당시 한국 건설의 중동 바람을 주도했다. 리비아 건설경기가 최고였을 때는 무려 2만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리비아 현장에서 땀을 흘렸다. 이들이 리비아에서 벌어들인 오일 머니는 한국 중산층을 형성해 소비 기반을 만들었고 산업발전의 기반이 되는 자본 축적도 가능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한국건설의 리비아 성공기에는 무아마드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있었다. 카다피가 없었다면 당시 전혀 인지도가 없는 한국 건설업체들이 그토록 많은 공사를 수주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카다피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맺은 각별한 인연을 바탕으로 한국 건설업체의 든든한 후견인 역을 자처해왔다. 이런 카다피가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해졌지만 그동안 카다피의 수혜를 가장 많이 입었던 한국 정부의 조치는 단호했다. 카다피의 입장에서 본다면 배은망덕한 한국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를 누구도 비판할 수 없다. 현재 리비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 건설사들의 공사 계약이 반군이 들어선 다음에도 연장될 수 있도록 반군 측의 환심을 사는데 모든 외교력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강대국에 치여서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조치다.  한국은 미국이 최고의 우방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지 우리는 국제적 문제가 발생하면 미국이 무조건 한국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는 착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의 노력과 믿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말 잘 듣는 한국보다 잘 사는 일본, 골칫덩어리인 북한에 더욱 관심을 쏟고 있다. 그 동안 한국은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신세가 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처럼 ‘영원한 혈맹과 영원한 원수는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국제사회뿐 아니라 한인사회에서도 이러한 법칙은 적용된다. 사이 좋게 지내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원수가 되었다가, 또다시 관계가 이어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10년 동안의 우정을 자랑하던 사이도 돈 문제가 걸리면 속수무책이다. 콜로라도 한인사회는 좁아서 이러한 현상이 더 심하다.  사람이 살면서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계가 좋아질 때가 반드시 온다. 그때 서로 민망하지 않도록 ‘막가파’적인 발언은 삼가도록 하자.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