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면 한다

2011-08-11     김현주 편집국장

 벌써 올해의 절반이 훌쩍 지났다. 새 뜻, 새 신념으로 똘똘 뭉쳐 신년 계획을 세웠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일년의 반이 지나고, 이젠 해도 짧아지기 시작하면서 가을 맞을 채비를 해야 될 것 같다. 더구나 콜로라도의 첫눈은 10월에 내린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일년이 다 가버린 느낌이다. 그래서 지난 8개월 동안을 뒤돌아보며, 중간평가를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오늘 부로 정확히 18 파운드를 감량했다. 일생일대의 목표 중 한 가지를 달성한 셈이다. 지난 1월1일부터 이를 악물고 시작한 필자의 다이어트 일기가 벌써 8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시간을 낼 수 없는 처지였기에 시작이 힘들었다. 매일 아침 도시락 세 개를 싸야 하고, 낮에는 회사 일, 저녁에는 아이들을 픽업해서 집안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도통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렇게 10여 년을 버텼다. 하지만 더 이상 다이어트를 미룰 수 없을 상태까지 왔다. 큰 맘을 먹고 운동시간으로 새벽을 선택했다. 새벽 5시30분에 기상해 신문 마감날인 수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에2시간씩 걷고 뛰고 팔 굽혀 펴고 윗몸 일으키기를 반복했다. 석 달째 되던 날, 포기하고 싶었다. 생각보다 체중 감량이 더뎠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것은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피트니스 센터까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잠에 취해 운전했을 때도 있었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이들의 얘기를 듣거나, 텔레비전 광고를 보면 ‘한달에 20파운드 감량’이라는 유혹적인 문구들이 마구 쏟아진다. 그래서 필자 또한 목표달성을 위해 두어 달 정도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큰 오산이었다. 남들이 말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나 자신과 싸워야 했다.

 7개월 만에 18파운드를 감량하고, 지금은 유지 상태에 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죽을 만큼 싫어했던 나는 이제 새벽5시이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이번 다이어트는 개인적으로 올해 최고의 성과일 것 같다.

요즘같은 힘든 경제상황 속에서, 나름 자기 밥그릇을 챙겨나가는 업체들을 보고 있으면 기특하기까지 하다. 최근에 업소록을 준비하면서 한인 비즈니스 리스트를 정리했었다. 느낀 점은 정말 경기가 안 좋다는 것이다. 그 동안 광고주의 70%는 부동산업, 융자업, 식당업계가 차지해왔지만 이들 또한 요즘은 형편이 여의치 못하다. 모두가 처한 상황이 비슷해 동병상련의 아픔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마이너스통장과 밀리고 밀리는 집세, 자동차 할부금, 각종 보험료와 공과금, 미래에 대한 불안이 스트레스와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지로 몇 주전 덴버에서 자살한 한인도 있었다.

 그래도 한인 비즈니스들은 제법 잘 버티고 있는 편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사상 최악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구책을 강구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업체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식당들은 저렴한 런치를 계속 제공하고 있고, 마트에는 파격적인 세일가격과 품질 좋은 상품이 대거 등장했다. 고기를 무한정으로 먹을 수 있는 대도시형 메뉴도 등장해 고기 애호가들은 더없이 좋은 기회를 맞았고, 푸짐한 밑반찬에도 불구하고 런치 가격은 바닥을 유지해주고 있다. 이 때문에 요즘은 LA에 있는 식당에 가서도, 덴버 식당이 그리울 정도가 되었다. 한 해로 끝날 것 같은 이러한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지고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악순환을 벗어나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한국인은 어려울 때일수록 저력을 발휘해왔기에 이번에도 지혜롭게 넘길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국이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현대중공업, SK텔레콤 같은 글로벌 기업군을 갖게 된 것도 IMF 위기 덕분이었다. 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탈바꿈했다. 한국경제에서 IMF 사태는 저주만은 아니었다. 10여년 전만 해도 삼성과 LG 전자의 제품은 품질 면에서는 자신 있었지만 소니 회사와 동등한 가격선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면서 품질을 인정받기 위한 일명 '서비스 세월'을 견뎌 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세계적인 제품으로 인정받아 제값을 받고 있다. 1960~70년대 경제개발에 달러가 필요하자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 가서 달러를 벌어 보냈다. 독일로 파견된 광부들은 지하1천 미터 막장에서 탄가루 묻은 검은 빵을 먹었고, 광부와 간호사 2만여 명이 연간 1천만 달러를 한국에 부쳤다. 또 10여 년 전 외환위기 때는 2개월 동안 350만 명이 장롱 속 금붙이를 꺼내 225톤, 1억7000만 달러 상당을 모았다. 전체 가구 중 23%가 동참한 것이었다. 1년 뒤 신용평가회사 S&P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올렸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예외 없이 공동체를 생각하는 집단 에너지가 분출됐고, 그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곤 했다. 그 동안  우리는 코리안의 대명사인 ‘한다면 한다’는 악바리 정신을 잠시 잊어먹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아직 늦지 않았다. 돈 버는 일이 아니어도 좋다. 올해를 마무리 할 때, 한 가지쯤은 ‘잘했다’라면서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는 일을 꼭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