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뽑는 팔란티어
기술 업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alantir)’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 회사를 단순한 테크 기업으로 보기에는 그 영향력이 너무 크다. 콜로라도 덴버에 본사를 둔 팔란티어는 데이터 통합, AI 분석, 국방 기술을 결합한 미국 정부의 핵심 기술 파트너로서 CIA·국방부·FBI·국토안보부 등 주요 안보기관과 수십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민간 분야에서도 에어버스, BP, JPMorgan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팔란티어의 플랫폼을 핵심 운영 인프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2023년 AI 플랫폼 AIP 출시 이후에는 “AI 시대의 산업·방위 표준”이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미국 증시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형 기술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부터 주가는 약 300% 상승했고, 시가총액은 전통 빅테크 바로 아래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처럼 국가 안보와 산업 운영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팔란티어가 최근 미국 고등교육 전반을 향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고등학교 졸업생만을 대상으로 한 ‘능력주의 펠로십(Meritocracy Fellowship)’이라는 채용 전형을 진행한 것이다. 지원 자격은 단 하나,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이다. 500명 이상이 지원했고, 그중 22명이 선발되었다. 팔란티어는 이들에게 월 5,400달러의 급여를 지급하며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하고, 4개월 훈련 뒤 성과가 입증되면 학위와 관계 없이 정규직 전환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가 오래전부터 “미국 대학은 더 이상 신뢰할 만한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고 비판해 온 점을 떠올리면, 이번 실험은 그의 문제의식을 기업 차원에서 공식화한 셈이다.
이 실험적 행보가 충격적인 이유는 미국의 기존 대학 교육 구조와 정면 충돌하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교육통계센터(NCES)에 따르면 컴퓨터·정보공학 전공 대학생은 약 65만~70만 명에 이르고, 매년 약 12만 명이 관련 학위를 취득한다. 테크 기업 취업을 목표로 치열하게 공부해 온 수십만 명의 학생들 앞에서 팔란티어는 “우리는 학위보다 실력을 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사실 실리콘밸리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대학 중심주의’에 대한 의문이 존재해 왔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명문 리드 칼리지에 입학했다가 6개월 만에 자퇴하며 “부모님이 마련해 준 등록금을 쓸모없는 공부에 낭비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고, 자퇴를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라고까지 평가했다.
페이팔·테슬라·스페이스X 초기 투자자로 유명한 피터 틸 역시 “대학은 쓸데없는 빚과 시간을 강요한다”며 “중요한 것은 졸업장이 아니라 능력”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 그가 창업한 회사가 바로 팔란티어라는 점은 이번 실험에 상징성을 더한다. 팔란티어의 이번 채용 공고는 어느 때보다 노골적이었다. 회사는 “미국 대학은 입학 기준이 불투명하고, 극단주의와 혼란의 온상이 됐다”며 “우리는 학벌이 아닌 능력만 보겠다”고 밝혔다. 선발된 22명 중에는 명문 브라운대 합격을 포기하고 온 학생도 있었다. 이는 학생과 대학 모두에게 결코 가벼운 신호가 아니다.
그렇다고 대학이 불필요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학은 지식을 습득하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네트워크를 쌓고 사회적 규율을 배우며,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중요한 사회화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대학이 산업 변화의 속도, 특히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AI 도구는 매달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지만, 대학 교과 과정은 5년·7년 주기로 바뀐다. 등록금은 비싸지고 졸업장의 실질적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팔란티어의 고졸 채용 실험이 모든 기업에 적용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실험은 한 가지 중요한 방향을 보여준다. AI 시대에는 학력보다 능력과 탐구 습관이 훨씬 빠르게 가치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성실한 대학생일수록 이 실험에서 더 큰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졸업장이 없어도 경쟁이 되면, 나는 더 뛰어난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 사고력, 문제 해결 능력으로 승부해야 한다.”이러한 각성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결국 팔란티어의 파격은 대학생에게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흐름은 미국 대학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대학은 더 실용적이어야 하고, 더 빠르게 변화해야 하며, 더 저렴하고 경쟁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이 주어진다.“당신은 어디에서 배웠는가?”가 아니라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AI 시대에 이 질문은 미국 대학이 다시금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재정의해야 할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졸업장이 모든 것을 보증해 주지 않는다. 능력과 창의성이 새로운 ‘학벌’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대학과 기업이 이를 공식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면, 새로운 인재 선발 기준은 과거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재편될 것이다.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