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장 셧다운

2025-11-14     weeklyfocus

11월 11일, 현재 마침내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Shutdown)이 종료될 것 같다. 이는 2019년의 35일 기록을 넘어선 미국 역사상 최장 셧다운이었다. 세계 초강대국의 정부가 한 달 넘게 멈춰 서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예산 문제가 아니라, 정치 기능이 고장 났다는 신호다. 이번 사태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예산안 협상이 결렬되면서 시작됐다. 공화당은 지출 삭감과 행정 효율화를, 민주당은 서민 복지와 의료 지원 유지를 주장했다. 양측 모두 ‘원칙’을 내세웠지만, 그 대가를 치른 것은 국민이었다. 

셧다운은 단순한 예산 충돌이 아니다. 정당의 이념 대립과 정치적 계산이 국민의 삶보다 앞섰고, 그 중심에는 정치의 무책임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의 회계연도는 매년 10월 1일에 시작된다. 그 전에 의회가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정부 자금 집행이 중단되고, 이른바 ‘정부 폐쇄’가 된다. 올해도 공화·민주 양당은 이 기한을 넘겨 협상에 실패했고, 결국 수십만 명의 공무원과 수천 개의 공공기관이 멈춰 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 셧다운은 공화당의 재정긴축 기조와 민주당의 복지·의료 확대 노선이 정면으로 부딪친 결과다. 공화당은 정부 규모 축소와 지출 삭감을 주장하며 이민자 관리, 기후대응, 복지 부문 예산을 줄이려 했다. 반면 민주당은 저소득층을 위한 오바마케어(ACA) 보조금과 푸드스탬프(SNAP) 유지가 불가결하다며 맞섰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비효율적 조직 정비”를 명분으로 연방 공무원 4,000명 해고 계획을 내놓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타협 대신 대치가 이어지면서 예산 합의는 완전히 교착상태에 빠졌다. 
 셧다운 장기화로 가장 먼저 피해를 본 이들은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였다. 푸드스탬프가 집행되지 않으면서 전국 약 4천만 명의 시민이 식료품 구매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앨라배마·미시시피·루이지애나 등 남부 빈곤주에서는 주정부가 자체 예산으로 긴급 보조를 이어갔지만, 일부 지역 슈퍼마켓 매출은 30% 가까이 줄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두고 “정치적 대치가 식탁을 비웠다”고 표현했다. 정치의 실패가 곧 생존의 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셧다운의 여파는 하늘에서도 이어졌다. FAA(연방항공청) 예산이 중단되면서 관제사들이 급여 없이 근무하거나 출근을 포기했다. 전국 42개 주요 공항이 영향을 받았고, LA·뉴욕·시카고·애틀랜타 등 대형 공항에서는 항공편이 평균 4~5시간씩 지연됐다. 항공정보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FlightAware)’에 따르면 지연 4,200편, 결항 1,520편이 발생했다. 일부 국제선 승객은 연결편 취소로 공항에서 밤을 새웠다. 한 한국 출장객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비행기는 도착했지만 애리조나행 환승편이 취소돼 공항에서 밤을 새웠다”며 “미국 정부가 멈추면 국민의 시간도 멈춘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단지 관공서의 문이 닫힌 사건이 아니다.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사건이다. 국립공원과 박물관이 문을 닫고, 세금 환급이 지연되며, 사회보장금 지급도 늦어졌다. “가장 안정적인 직장”이라던 연방기관의 신뢰도가 흔들렸다. 수십만 명의 공무원이 무급휴직을 강요받는 동안 하루 생산손실은 약 3억 달러에 달했다. 이같은 정치적 대립은 행정 마비를 넘어 “정부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냉소로 번지고 있다. 

그 충격은 세계 경제에도 미쳤다.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의 기능이 축소되면서 수출입 서류 처리와 관세 조정이 지연됐다. 한국·유럽·아시아 주요 교역국과의 협상 일정도 중단됐고, 국무부 인력 감축으로 주요 정상회담이 잇따라 연기됐다. 특히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F) 협의 중단과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예산 지체는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흔들었다. 

다행히 이번 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셧다운 종료 타협안 수용 의사를 밝히며 재가동 가능성이 열렸다. 그러나 이번 셧다운은 단순히 ‘언제 끝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할 것인가’가 진짜 과제다. 이를 위해 몇가지 대안을 제시해본다. 첫번째가 예산 자동승계제(Auto-CR) 도입이다.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전년도 예산을 일정 기간 자동 연장해 필수 정부 기능이 마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두번째는 푸드스탬프·항공국·사회보장국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기관은 예산 지원을 예외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더불어 예산안 교착 시 각 정당과 의원이 반대한 조항을 공개해 국민이 직접 책임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책임 실명제’도입도 검토할 만하다. 

40일간 이어진 셧다운은 정부의 기능이 아니라 정치의 책임감이 멈춘 사건이었다.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고, 국민만 기다렸다. 행정은 정지되었지만, 전기요금은 멈추지 않았고, 비행기표는 취소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종료가 가까워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국민은 “다음 셧다운이 언제일지”도 걱정하고 있다. 예산안 통과가 아니라, 정치가 현실을 책임지는 순간이 진정한 종료다. 정치는 멈추면 안 된다. 멈춰 선 정부보다 더 큰 문제는, 제 역할을 잃은 정치인들의 책임감이 아닐까.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