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받는 운전면허증

2025-11-07     weeklyfocus

연방 국토안보부(DHS)가 각 주의 운전면허 데이터를 연방의 ‘시민권 및 복지 자격 검증 시스템(SAVE)’에 연동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계획은 지난 10월 31일 공개 통지와 함께 확인되었으며, 텍사스 주에 시범 연계를 타진한 사실이 내부 이메일을 통해 드러났다. 표면적인 명분은 비시민권자 유권자 식별과 복지 부정 수급 방지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전국 단위의 시민권 검증 체계 구축이라는 더 큰 구상이 숨어 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재추진 중인‘전국 단일 시민권 검증 시스템’의 핵심 축으로 평가된다.

SAVE는 본래 이민자 및 복지 수급 자격 심사를 지원하는 행정 시스템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보장국(SSA) 데이터와 여권·비자 정보까지 통합하면서, 이제는 운전면허 데이터까지 흡수할 위기에 놓여 있다. 운전면허는 사실상 모든 성인이 보유한 가장 보편적 신분증이다. 따라서 이를 통합한다는 것은 단순한 데이터 확장이 아니라, 모든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신분 및 권리 검증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연방 국토안보부는 최근 텍사스주 공공안전국에 운전면허 정보를 SAVE 시스템과 연동하는 시범사업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스템은 이미 사회보장국 데이터와 여권·비자 정보를 통합해왔으며, 여기에 운전면허 정보가 더해지면 사회보장번호가 없는 유권자까지 운전면허 번호를 통해 시민권 여부를 대조할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 데이터가 사실상 트럼프 시스템 완성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단순한 행정 효율성의 차원이 아니다. 핵심은 정확성과 개인정보 보호다. 운전면허 데이터에는 출생지, 생체정보, 주소, 이메일, 고용정보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운전면허 번호는 주마다 중복·변경 가능성이 높아 오분류 위험도 크다. 이러한 정보를 연방 차원에서 수집·통합할 경우, 정보 오용의 위험은 물론 정부의 과도한 감시 체계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데이터 오류나 중복 등록으로 인해 시민권자가 ‘비시민권자’로 잘못 분류될 경우, 선거권 박탈 등 심각한 인권 침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

과거의 사례는 이를 경고한다. 2012년 플로리다주는 운전면허 자료 등을 근거로 ‘비시민권자 의심’ 명단을 작성해 선거 직전 대규모 정리를 시도했으나, 다수의 시민권자를 잘못 지목해 연방법90일 규정 위반 논란과 함께 법무부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는 선거 직전의 대량 정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법원 역시 과도한 시민권 증빙 요구에 제동을 걸어왔다. 캔자스주의 ‘시민권 서류 제시’ 요건은 헌법 위반으로 연방지법에서 무효 판결을 받았고, 대법원도 2020년 그 부활 시도를 기각했다. 이는 ‘선거 무결성(Election Integrity)’이라는 명분이 유권자 박탈로 이어지는 조치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례다. 참고로 선거 무결성이란 결과의 정확성뿐 아니라, 모든 유권자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절차의 공정성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물론 정부가 선거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투명성은 정확한 데이터와 신뢰 위에 진행되어야 한다. 데이터의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시민의 기본권을 의심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은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감시가 아니라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검증이 아닌 신뢰의 체계가 민주주의의 토대이며, 유권자의 신분을 의심하기보다 유권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첫 번째 책무다.
 이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검증’의 폭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 구체적 방향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정확성 보장이다. 데이터 결합·매칭 과정의 오류율을 공개하고, 독립적 감사기관의 감독을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절차적 권리 보호다. 유권자 통지·이의제기·복구 절차가 반드시 마련돼야 하며, 정보 오류가 유권자 삭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 투명성 확보다. 연방·주·지방 간 데이터 통합의 범위·목적을 공개하고, 데이터 활용 시 최소성 원칙이 준수돼야 한다.

운전면허 정보를 중심으로 한 이번 연방 통합 계획은 ‘효율적 유권자 명부 정비’라는 미명 아래, 참정권을 제한하는 잠재적 제재 메커니즘으로 기능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유권자가 권리를 행사하기 전에 그 자격을 먼저 증명해야 한다는 발상은 본질적으로 권리의 역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운전면허 데이터 통합을 추진하려면, 연방 데이터베이스가 유권자 검증 목적으로 확대되는지에 대해 반드시 입법적·행정적 조사를 거쳐야 하며, 공개 청문회를 통해 국민적 검증을 받아야 한다. 또한 주정부 운전면허국(DMV) 등 데이터 제공 기관의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법률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감시자가 아니라 시민의 동반자로 돌아와야 한다. 그 출발점은 “운전면허 데이터의 연방 통합이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필요한 만큼만,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한다. 국민의 신분을 의심하기보다 그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이다.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