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에서 시작된 성장 일기

2025-10-09     weeklyfocus

 10월은 대학 진학을 위해 고등학교 시니어들이 에세이를 마감해야 하는 시기다. 그래서 교육 전문가들은 여름방학 때부터 미리 에세이를 준비하라고 조언하곤 한다. 필자도 그 말을 따라, 이제 시니어가 된 둘째 아들에게 여름부터 에세이를 쓰라고 수없이 종용했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콜로라도 무료 대학 지원일(Colorado Free Application Day)’이 이번 주로 다가왔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 토요일 부랴부랴 아들에게 에세이를 보여 달라고 했는데, 아들은 왠지 그걸 보여주기 꺼려하는 듯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엄마가 보고 싶다”고 부탁하니, 아들은 마지못해 이메일로 에세이를 보내왔다.

필자는 아들의 어린 시절 사진 중 가장 재미있어하는 사진이 한 장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곤 했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며칠 동안 도시락을 먹지 않고 돌아온 것에 화가 나서 도시락을 들고 서 있는 벌을 내린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이 너무 귀엽고 우스꽝스러워 사진을 찍어 두었고, 나는 그 사진을 추억하며 늘 웃곤 했다. 그런데 이날 둘째 아들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 사진이 웃을 일이 아니라 울어야 할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때의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미련한 엄마였다는 생각에, 지난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에세이의 첫 부분에는 도시락 이야기가 있었다. 나름 필자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이었지만,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김밥이나 불고기 주먹밥을 자주 싸주던 기억이 나는데, 치킨 너깃이나 샌드위치보다 냄새가 강했던 것이 놀림의 이유였다. 도시락통을 열자 낯선 냄새가 난다며 친구들이 수군거렸고, 아들은 점점 도시락을 열지 않게 되었다. 어떤 날은 엄마에게 혼날까 봐 먹지 못한 도시락을 버리기도 했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점심을 먹지 못하고 배고픈 채로 집에 온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 대목에서 필자는 가슴이 먹먹했다. 아들의 감정도 모르고, 도시락을 머리 위로 들고 서 있으라는 벌을 내렸던 것이다. 아들은 엄마가 아침일찍 일어나 열심히 도시락을 싸는 정성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즐거운 추억’이라며 꺼내 보았으니, 얼마나 한심한 엄마였는지 미안함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헨리의 에세이는 이어졌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되지 않아 아들은 생일 파티에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메뉴는 피자나 치킨이 아니라, 단무지와 시금치를 뺀 김밥과 불고기, 만두였다. 그 맛을 알고 난 학급 친구들은 한국 음식의 냄새와 맛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하루 걸러 우리 집에 놀러왔고, 흰 밥에 간장과 참기름을 넣어 김에 싸 먹거나, 불고기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친구들은 헨리의 도시락 반찬에 만두나 불고기를 상상하며 관심을 보였고, 더 이상 아들은 도시락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도시락의 냄새로부터 시작된 부끄러움은, 결국 친구들과의 식탁 위에서 자랑으로 바뀌었다.
 아들은 또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학교생활 중 아시안의 외모로 인해 위축된 적이 있었다고도 고백했다. 유치원 때는 몰랐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했다. 특히 트럼프 1기 시절의 인종차별적 사회 분위기가 그를 더욱 위축시켰던 것 같다고 했다.

아들이 다니는 지역은 초·중·고가 연결된 학군이어서 친구들이 대부분 그대로 이어졌다. 지금 아들에게는 9명의 절친이 있는데, 모두 백인이고 우리 가족만 아시안이다. 처음엔 그들과 어울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헨리는 스포츠 담당 교내 기자 활동을 택했다. 다양한 종목의 학생 선수들을 취재하며 자연스레 친해졌고, 자신의 역할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덕분에 친구도 많아졌고, 지금은 키크고 훤칠한 아시안 인기남으로 등극했다는 자랑섞인 문장도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부끄러웠던 시작이었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에세이 전반에 담겨 있었다. 이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겪은 시련과 잘못된 선택, 그리고 그것을 이겨낸 과정에서 받은 좌절과 기쁨이 섞인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해 놓았다. 이날 에세이를 읽으면서 필자는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의 당시 감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별일 아니겠지”라며 무심코 넘겼던 시간이 떠올라 많이 미안했다. 늘 “알아서 잘하겠지”라고만 생각했을 뿐, 사춘기 아들의 고민과 번뇌를 내방식대로 보려 했음을 인정한다.

미국에는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산다. 하지만, 피부색과 성적에 상관없이 아이들은 각자 나름의 콤플렉스를 안고 있다. 그것을 인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겨내는 과정은 참으로 대견해 보인다. 아들은 “이 글을 쓰면서 내 안에 있던 매듭 한 개가 풀린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아주 오랫동안 몰랐던 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유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우리의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게 자라고 있다. 이들은 분명 부모 세대보다 더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고, 새로운 전환점을 준비하고 있다. 이 시점에 부모가 할 일은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일임을, 필자는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의 약점을 과감하게 표현해 준 헨리의 에세이는 짧지만 감동적인 단막극을 보는 듯했다. 그래서 헨리의 에세이는 그의 성장 이야기였지만, 결국 필자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밤을 새우며 원서를 준비하는 모든 수험생들에게 따뜻한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여러분들의 노력은 이미 빛나고 있으며, 그 길 끝에는 분명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