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의 문턱에서

2025-05-30     weeklyfocus

 미국의 5월과 6월은 ‘졸업의 계절’이다. 고등학교 체육관부터 명문대학의 잔디밭까지, 수많은 학생들이 ‘졸업’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에 서서 새로운 장을 연다. 졸업식이 시작되면 한 명씩 호명되는 졸업생의 이름에 가족들과 참석자들은 아낌없는 박수로 화답하고, 식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찬다. 이 날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그들의 지난 시간에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웃고, 울고, 서로를 끌어안는 이 순간은 단지 한 시절의 끝이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만, 미국에서는 졸업 이후 군 입대, 취업, 기술학교, 커뮤니티 칼리지 등 다양한 진로가 열려 있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졸업은 단순한 학업의 마침표가 아닌, 사회의 일원으로 첫발을 내딛는 통과의례(Rite of passage)와도 같다. 동시에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선택을 증명하는 첫 순간이기도 하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보호받는 존재에서 책임지는 존재로의 이행이 담긴 이 날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올해도 많은 한인 2세들이 우수한 대학들에 진학하고, 졸업생 대표인 발레딕토리안으로 선발되는 등 자랑스러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뛰어난 학생들 못지않게, 우리 주변에는 평범한 학생들이 훨씬 더 많다. 필자는 그들에게, “고등학교 성적이 좋지 않거나 지금 당장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재능은 언젠가 빛을 발하게 마련이다. 필자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지금은 1등이 아니었던 아이들의 미래가 더 궁금해진다. 성공이란 결국 자신의 속도에 맞게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잘했든 못했든, 졸업하는 모든 학생들이 대견하다. 그들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무게를 견디며 4년을 버텨냈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이를 키우며 가장 크게 배운 점은, 부모의 기대나 욕심이 아이의 선택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그들의 선택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이들이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하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이 ‘독립의 시작’이라면, 대학교 졸업은 ‘책임의 실현’이라고 하겠다. 유명 대학교의 졸업식장에는 유명 정치인들의 스피치가 화제가 되곤 한다. 청년들이 사회로 완전히 나아가는 이 시점에서 지도자들의 삶의 방향과 가치를 담은 조언은 단순한 축하를 넘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준다. 그들의 말은 때론 감동이 되고, 때론 용기가 되며, 새로운 출발점에서 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9년 노트르담대학교 졸업식에서 “변화는 누구에게나 두렵다. 그러나 두려움을 마주하고 나아가는 것이 진짜 용기”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을 더 넓은 이해와 공감의 출발점으로 정의하며, 성공보다 이해의 깊이를 삶의 지표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2017년 웰즐리 칼리지에서 “진실을 말할 용기,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믿는 것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졸업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 선언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23년 모어하우스 칼리지 졸업식에서 “절망보다 희망을 선택할 용기”를 강조하며, 졸업생들에게 정의와 공동체에 대한 약속을 갱신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졸업이 단순한 개인의 성취가 아닌, 공공의 책임과 도덕적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은 2016년 시티칼리지 오브 뉴욕 졸업식에서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라”고 조언했다. 졸업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이 그녀의 메시지였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은 2004년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교육은 지식의 축적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도구”라고 강조하며, 졸업생들에게 자신의 열정을 통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라고 당부했다.

지난 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을 모두“승자(winners)”라고 부르며, 졸업생들의 선택과 헌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미국 군대의 전통과 강력한 군사력을 강조하며, 그 전통을 이어가야 할 책임이 졸업생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연설 역시 단순한 축하를 넘어, 국가를 향한 새로운 책임과 도전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결국,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졸업장은 지식의 증서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짊어질 준비가 되었음을 세상에 알리는 선언이다. 고등학교 졸업은 독립과 가능성의 문을 열고, 대학 졸업은 실천과 책임의 여정을 시작하게 한다. 졸업 연사들의 메시지는 정치적 입장이나 시대를 넘어 하나의 진실로 귀결된다. 그것은 바로 “이제 당신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강력한 통보다. 그리고 졸업장을 손에 쥔 이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어떤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이 졸업의 순간이, 그들의 성숙한 출발을 알리는 첫 문장이 되기를 바란다.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