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에 담긴 무게
여름방학과 함께 본격적인 휴가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이맘때면 많은 이들이 가족들과 함께 어디로 떠날까 고민하며 여행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다. 특히 몇 시간만 비행기를 타면 전혀 다른 풍경과 동물을 만날 수 있는 글로벌 시대, 이국적인 자연을 경험하고자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코알라를 안아보고, 초원을 달리는 야생 캥거루를 촬영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이 ‘가까움’이 때로는 너무 가깝다. 지나치게 다가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경험’이 아니라 ‘침해’가 된다. 자연과 교감하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 경계가 무너질 때 생태계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본인만의‘기억에 남는 여행’을 위해 누군가의 삶을 흔드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최근 호주에서 벌어진 ‘웜뱃 사건’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의 한 SNS 인플루언서가 호주 여행 중 어미 웜뱃 곁에 있던 새끼를 억지로 떼어내 안은 뒤, 이를 자랑스럽게 촬영해 온라인에 공유했다. 영상 속 어미 웜뱃은 놀라 도망쳤고, 새끼는 불안에 떨며 울부짖었다. 해당 여성은 '인기 있는 콘텐츠' 하나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그 대가는 컸다.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고, 호주 총리는 “웜뱃을 훔치지 말고, 차라리 악어 새끼를 데려가 보라”며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관광비자 취소 요구가 빗발치자, 해당 인플루언서는 결국 서둘러 호주를 떠나야 했다.
호주는 세계적으로도 야생동물 보호에 있어 가장 엄격한 국가 중 하나다. 웜뱃뿐만 아니라 코알라, 캥거루, 딩고, 에뮤, 태즈메이니아 데블 등 다양한 동물들이 주 및 연방 정부의 보호법에 의해 엄격히 관리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일부는 특별 보호구역에서만 제한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코알라는 귀여운 마스코트로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서식지 파괴, 전염병, 산불 등으로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위기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관광객이 이들을 안고 사진을 찍는 것은 특정 보호시설 내에서, 정해진 교육을 이수한 후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캥거루 역시 마찬가지다. 야생에서 이들을 향해 다가가거나 먹이를 주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며, 자칫하면 공격적인 반응으로 인한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법규를 위반하면 벌금은 물론, 비자 취소나 추방 같은 법적 조치가 취해진다. 실제로 호주 이민청은 야생동물 관련 법규를 위반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입국 금지나 강제 출국 조치를 수차례 단행한 바 있다.
이러한 문제는 호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생태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갈라파고스 제도(에콰도르) 역시 마찬가지다. 이 지역에서는 야생동물과 최소 2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이구아나, 바다사자, 새 등과 접촉하거나 사진 촬영을 위해 접근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이를 어긴 관광객은 거액의 벌금을 물거나, 입도 즉시 추방되는 사례도 있다.
아시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태국에서는 여전히 코끼리 타기 체험이 인기지만, 그 이면에는 철창 속 학대와 고통이 숨겨져 있다. 상당수 코끼리들이 ‘팔아먹기 위해 길들여진’ 존재라는 사실을 모른 채 관광객은 체험을 즐기고, SNS에 웃는 얼굴의 인증샷을 올린다. 발리의 원숭이 사원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원숭이를 자극하거나 안으려 하면서 동물의 공격성은 높아지고, 감염병 전파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지 당국은 접근 금지 구역 확대와 함께 강력한 규제 정책을 검토 중이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는 매년 ‘들소(Bison) 셀카’를 찍으려다 중상을 입는 사건이 되풀이된다. 공원 내 곳곳에 “야생동물과 최소 25야드 이상 거리를 유지하라”는 경고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관광객은 여전히 많다. 일부는 야생동물을 마치 동물원 속 사육된 존재로 착각하고, ‘경계’라는 개념 자체를 무시한 채 행동한다.
이처럼 SNS를 중심으로 한 ‘경험의 소비’ 시대, 인상적인 한 장의 사진이 중요한 여행 목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그 한 장 뒤에 숨겨진 생명, 수천 년간 지속되어온 생태계의 질서,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보존 노력이다. 야생동물을 ‘구경거리’로만 보는 태도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다. 지구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여행 중 마주치는 모든 자연은 우리의 책임 아래 놓인다. 그 책임감이 모일 때, 다음 세대도 야생의 생명을 존중하며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이제 여행은 단순한 소비의 수단이 아니라, 타국의 법과 문화를 존중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이어야 한다. 동물과 마주쳤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꺼내야 할 것은 셀카봉이 아니라 ‘거리두기’이며, 셔터를 누르기 전에 먼저 작동해야 할 것은 ‘존중’이다. 진정한 여행자는 사진 한 장보다 깊은 배려를 남긴다. 그것이 우리가 지구라는 공동 집에 사는 이유이며, 미래의 여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결국 여행이란, 낯선 세계를 마주하며 더 나은 인간으로 거듭나는 기회여야 한다. 그곳에 사는 생명에 대한 존중은 우리의 품격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는 것, 그것이 문명인의 책임이다. 자연은 여전히 우리를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초대에 걸맞은 손님이 되어야 한다.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