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 민주주의의 분기점

2025-04-11     weeklyfocus

윤석열 전 대통령이 4월 4일 파면되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대에 오른 지 111일 만, 변론이 종결된 지 38일만이다. 헌재는 역대 최장 심리기간을 들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사건 접수부터 파면까지 91일, 최종 변론부터 결론까지 11일이 걸렸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접수부터 63일, 변론 종결부터 14일 뒤 기각 결정이 나왔다. 결정이 늦어지자 우려는 속출했다. 하지만 헌재는 윤 전 대통령 측과 탄핵반대 세력의 불복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철저한 법리 검토와 토론을 거쳤고, 그 결과 만장일치 파면 결론에 다다랐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내란 혐의 형사재판에서 그와 공범 관계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등의 수사기관 진술 내용이 증거로 쓰이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에 집중했다. 

그러나 헌재는 결정문에서 이런 윤 전 대통령 측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 결과 결정문에는 전문 증거보다 헌재 심판정에서의 증인 신문 내용 등이 주요하게 파면 근거로 담겼다.  다시 말해 헌재는 극심한 사회 갈등을 우려해 절차적 문제 제기까지 꼼꼼하게 따지느라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됐고, 결과적으로 만장일치 결론을 내림으로써 불복 빌미를 차단했다. 실제로 헌재 파면 결정이 나온 뒤 윤 전 대통령 측과 여당 정치인들의 헌재에 대한 비난은 예상보다 적었다.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 또한 격렬하게 반발하는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다.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 인용 선고 이후, 공세 수위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향한 민주당의 강공 모드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여대야소(與大野小) 속에 살면서 ‘집권층의 횡포’와 ‘야당 탄압’이라는 구도에 익숙해져 있었다. 집권 여당은 소수 야당을 옥 죄어 왔으며, 권력형 부조리와 횡포 역시 집권 여당의 몫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인지 야당 편에 서서 야당을 도와주는 것이 민주 시민의 역할이라는 의식이 강해서, 여권은 보수·우파, 야권은 진보·좌파로 편 가름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여당의 횡포에는 비판적이고, 상대적으로 야당의 부정에는 다소 너그러웠던 것 같다. 그러나 21대 국회부터 이러한 고정관념이 깨졌다. 거대 야당이 이끄는 국회가 구성되었고, 여당과 야당의 입지가 바뀌는 역대 최고 역전의 산물이 탄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전 대통령은 어리석게도 야권이 쳐놓은 미끼를 덥석 물었다. 계엄, 결정적인 실수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은 인용되었지만 이번에 탄핵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는 지난번 때와 달리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이제 국민들은 덮어놓고 여당이라고 비난하고, 야당이라고 두둔하던 그런 이분법적 시대를 벗어나고 있다. 탄핵 반대에 앞장 선 2030 세대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거대 야당의 거들먹거림에 의한 식상함을 느끼고 탄핵 반대 전선에 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총선에서 거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우쭐해졌고,  이번 사태에서는 탄핵 소추를 남발하는 거대 야당에 대한 거부감 일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는 ‘비상계엄’이라는 단추를 누르고도, 기대 이상으로 탄핵 반대를 외친 2030 세대와 보수층의 지지를 얻은 것은 거만한 야당을 만들어 준 국민적 보상 심리 때문은 아닐까.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오는 6월 3일 조기 대선이 확정되었다. 60일도 남지 않은 촉박한 시간표에 각당 대선 주자들은 물밑에서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대선은 강력한 제3의 후보 없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양자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국민의힘에서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전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유승민 전 의원과 안철수·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10명 이상의 후보로 당내 경선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선의 가장 큰 변수는 윤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이 정치 세력화를 도모하면서 탄핵 반대 후보를 지지하면 다시 친윤석열 대 비윤석열 구도가 형성되고, 대선도 ‘윤석열 대 이재명’의 재대결로 치러질 공산이 크다. 국민의힘이 집권해야 사면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은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를 지지할 것이란 예견도 나온다.

헌재 선고 직후 윤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감사하다' 식의 인사만 건넸을 뿐, 헌재 판결에 대한 승복은 담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은 법 위에 설 수 있는 권력은 없으며, 국민은 더 이상 눈감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동시에 울림도 남겼다. 헌재의 만장일치 결정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원칙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며, 그 과정에서 국민 역시 단순한 정치적 편가르기를 넘어서 성숙한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분열과 갈등을 넘어, 책임과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인들은 이 사태가 남긴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고, 국민과 역사 앞에 더 겸손하고 성찰적인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6월 조기 대선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니다.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보복도, 정쟁도 아닌 안정과 미래다. 변명은 끝났다. 이제는 결과로 말할 시간이다.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