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기회, 멀리건
골프에‘멀리건’(Mulligan 일명 몰간이라고도 함)이란 용어가 있다. 게임 시작 첫 홀에서 티샷을 실수했을 때, 같이 라운딩을 하는 사람들의 배려로, 실수한 샷을 없었던 것으로 선언하고 한 번 더 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행위를 말한다. 물론 이것은 정식 룰이 아니기 때문에 친선 골프게임에서는 적용되지만 공식적인 게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멀리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1920~30년대 캐나다 출신 아마추어 골퍼인 데이비드 B. 멀리건(David B. Mulligan)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가 귀했던 시절, 캐나다의 한 마을에 골프 매니아로 알려진 ‘멀리건’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자신의 자동차에 골프 메이트들을 태우고 마을로부터 장시간 거리에 위치한 골프장을 함께 다니곤 했다. 그런데 골프장에 갈 때마다 오랜 시간 동안 운전한 피로 때문인지라 멀리건은 항상 첫 번째 홀에서 티샷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멀리건의 차를 얻어 타고 온 동네 친구들이 미안한 마음에서 특별히 그에게 실수한 첫 홀 첫 번째 샷을 한 번 더 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그것이 그의 이름을 딴 ‘멀리건’이라는 용어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도 골프를 배울 때 동반자의 차를 얻어 타고 골프장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고마운 마음에 운전해 준 골퍼의 실수에는 "몰간"을 호쾌하게 외쳐주었다. 상대 골퍼가 몰간을 받든 아니 받든, 멀리건의 허락은 18홀 라운딩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서로의 친선도모에도 윤활유 역활을 했던 것 같다.
미국의 저명한 경영 컨설턴트이자 리더십 전문가인 켄 블랜차드(Ken Blanchard)의 저서인 ‘골프와 인생(Golf for Life)’에서는, 골프에서 멀리건을 허용하듯 인생에서도 한 번의 실패로 끝이 아닌 두 번째 세 번째 멀리건의 기회가 허용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수를 처벌하는 대신 다시 도전할 기회를 주고,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인간관계에서도 효과적인 접근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폴은 한 번의 실패로 전전긍긍하며 인생을 허비하기보다는, 앞으로 무수히 많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굳게 믿고, 후회를 기회의 프레임으로 바꾸며 미래의 삶을 골프 게임을 통해서 배웠다. 그의 또 다른 저서 ‘더 멀리건(The Mulligan)’ 에서는 ‘골프 게임처럼 인생에서도 헛스윙을 하거나 엉뚱한 샷을 날릴 때도 있지만, 자네에겐 멀리건이 있다는 걸 잊지 말기를’이라고 적어놓았다. 책의 내용대로 골프는 인생과 흡사한 점이 많다. 골프와 너무 비슷하게도 우리 삶의 근본에는‘기회는 한 번밖에 없다’는 성공지향적인 결정론이 우리의 인생샷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우리의 인생도 이러한 멀리건이 필요한 여정이다. 멀리건의 개념은 단순한 골프 용어가 아니라, 실수에서 배우고 다시 도전하는 기회를 주는 철학으로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멀리건을 주면, 실패에서 배울 수 있고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타인에게 멀리건을 주면,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신뢰가 쌓일 것이다.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포기하지 말고, 두 번째 기회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것이 멀리건이 주는 가장 큰 인생 교훈이 아닐까 싶다.
몇 해 전, 멀리건하면 생각나는 선배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최근 그 선배가 아들과 함께 달라스를 방문했고, 우리는 달라스 포커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선배는 명문대를 졸업했고 잠시 언론사에서 일을 하다가, 회사를 차려 성공가도를 달렸었다. 동문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의 경제적인 부를 가진 선배였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돈은 벌었지만 아내와는 이혼을 했고, 조기유학을 보낸 아들과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또, 사업체를 꾸려나가면서 조금이라도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면,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술을 마셨다. 이로인해 건강에 적신호가 왔고, 지금은 모든 사업을 접고 공기좋은 곳에서 요양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아들을 일찍 유학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아내와도 적당히 잔소리 듣는 사이를 유지하며 이혼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그런데 그는 60세가 넘어서 인생의 두번째 기회가 찾아왔다고 했다. 아들과 함께 골프 라운딩을 즐기면서부터다. 선배와 아들은 잘쳐야한다는 긴장감으로 형편없는 티샷을 자주 날렸다. 그럴 때마다 ‘멀리건’으로 서로에게 두번째 찬스를 허락했고, 이런 시간을 자주 갖게 되면서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부자관계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배는 스스로를 닦달하고 목표에 집착하는 필자에게, 본인에게도 ‘멀리건’을 주는 너그러움을 품어보라고 조언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성공하지 못했고 어떤 사람은 파탄 난 가정생활에 괴로워하며, 또 누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 몸부림치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이 후회와 아쉬움의 근본에는 ‘기회는 한 번밖에 없다’는 1회 결정론이 있었던 것 같다. 아들 머리 위에 얹은 사과를 한 번에 맞춰야 살 수 있는 소설 속 빌헬름 텔처럼 말이다.하지만 선배의 말처럼 인생은 멀리건으로 가득 차 있다. 첫 번째 샷을 망쳤다면 두 번째 샷에서 잘치면 된다. 두 번째 샷 또한 망쳤다면 세 번째 샷을 잘 치면 된다. 처음에는 많은 멀리건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멀리건의 찬스가 우리에게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점차 멀리건의 수는 줄어들 것이고, 삶은 긍정으로 가득찰 것이다. 필자는 장애를 극복하고 의사나 목사가 되고, 부상의 아픔을 딛고 세계적인 선수나 코치가 되고, 파산선고를 하고도 다시 성공을 향해 달리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본 적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온 두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도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첫번째 기회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더 멀리 날아갈 세컨샷도 기대해보자.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