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며
윤석열 대통령이 8일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돼 서울 한남동 관저로 복귀했다. 내란 혐의로 체포·구속된 지 52일 만이다.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무리하게 수사를 밀어붙이고 검찰은 법정 구속 기간 만료 후 기소하는 등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는 점에서 석방은 불가피했다. 석방된 윤 대통령은 구치소 정문에서 나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했다. 한남동 관저 앞에선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눴다. 윤 대통령은 지금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신분이다. 국회의 탄핵 소추로 직무가 정지되었고, 헌법재판소의 심판도 받고 있다. 석방은 절차적 위법성 때문이지 내란 등의 혐의를 벗은 게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앞두고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은 최대한 피해야한다. 그런데 석방 때 보인 자세는 절제된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고, 자칫 정치적 논란을 부를 소지가 있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개선장군 같다”고 비난했다.
전국에서는 연일 탄핵 찬반 장외 집회가 열리고 있다. 대통령 탄핵을 두고 온 나라가 둘로 쪼개져 있다. 이렇다보니 국민들의 관심은 언제 탄핵 선고가 결정된 것인가에 있다. 2024년 12월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시작되었고, 그후로 헌재는 빠르게 움직였다. 1월14일 첫 변론을 시작으로, 2월25일 11차 변론이 마무리되었다. 총 73일 만에 변론이 종결된 셈인데, 이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91일)과 비교하면 꽤 빠른 속도이긴 했다. 헌재는 매일 평의를 열고 있으며, 탄핵 선고일을 결정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에 들어갔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3월 중순, 특히 이번 주 3월 14일 이 탄핵 선고 예정일로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탄핵 선고일이 중요한 이유는, 이 날에 따라 대통령의 운명은 물론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이 바뀔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윤 대통령은 즉시 파면되고 60일 내에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반대로 기각되면 직무에 복귀하면서 정치런 혼란이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변론 종결 후 11일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14일 만에 결론이 났고, 모두 금요일에 발표되었다. 헌재가 심판 일정을 정할 때는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첫번째는 재판관 수이다. 현재, 헌재는 9명 중 1명이 공석인 8인 체제로 되어 있다. 헌법상 탄핵 인용에는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니, 8명 중 6명이 찬성해야 결론이 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헌재의 심판 일정은 이미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용이든 기각이든 그 결과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 지 걱정이 앞선다.
법원의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 이후 여야 정치권의 헌법재판소 압박이 더 심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헌재가 즉각 윤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는 더불어민주당은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 석방을 두고 심 검찰총장에 책임을 묻겠다며, 이번 주에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회가 심 총장에 대해 탄핵소추안을 의결한다면, 30번째 탄핵이 된다. 이에 국민의힘에선 친윤계를 중심으로 헌재에 탄핵 심판 변론 재개를 요구하거나 탄핵을 각하 또는 기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이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승복 선언보다는 헌재를 압박하며 갈등을 조장하고 나서자 탄핵 찬반 세력 간 시위도 점점 격해지고 있다. 양측의 갈등 수위가 높아지면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통합이 아니라 분열과 갈등의 격화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과 같은 여야의 행동은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 예고와 다를 게 없다. 윤 대통령은 헌재 심판이 나올 때까지 최대한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치적 발언이나 외부 인사와의 만남도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민의힘 또한 헌재를 비판·압박하며 불복을 부추겨선 안 된다. 그리고 여야는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존중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히고, 국민에게 차분하게 헌재 결정을 지켜보자는 통합의 메시지를 내야 한다. 그것이 비상 계엄 사태로 촉발된 국민 갈등을 치유하고 국정을 정상화하는 길이며, 나아가 구겨진 국제적 이미지를 바로잡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법치주의의 최종적 판단이며,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있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헌재의 판결 이후 정치권은 승자와 패자의 논리로 접근하기보다, 국가의 안정을 우선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과 정치적 선동이 이어진다면 국민 분열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국민들도 감정적 대립을 멈추고, 차분한 자세로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헌재 판결 이후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냉정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법과 절차를 준수하며 국정을 정상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윤 대통령 역시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대통령으로서, 헌재 결정 이후 그에 따른 조치를 신중하게 취해야 한다.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대통령으로서 국론 분열을 막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헌재의 결정이 아닌, 그 결정을 받아들이는 우리 모두의 자세에 달려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정치권과 국민이 법치주의의 원칙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