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를 다녀와서
황상숙
매년 7월이면 재미한국학교협의회(NAKS)가 주관하는 국제 교육 학술대회가 열린다. 작년 시애틀에 이어 올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다녀왔다. 3박 4일의 시간과 비용이 들고, 작년과 달리 올해에는 3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가야해서 참석 여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아기가 강의시간 동안 잘 자서 무난히 일정들을 소화할 수 있었다.
학술대회 일정은 굉장히 빡빡하다. 목요일 오후 1:30부터 10:30까지, 금요일과 토요일은 아침 08:30부터 밤 10:30, 11:30까지 각종 포럼과 강연 및 강의, 각종 행사들이 열리기 때문에 편하게 식사할 여유도 없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고된 일정이지만 미국 전역에서 모여든 한국학교 선생님들의 얼굴에는 가르침에 대한 고민과 열정이 가득하다. 젊은 사람들보다 40대 이상이신 분들이 훨씬 많다. 올해도 10년 이상 장기근속으로 공로패를 받으신 분들이 46명이나 되었는데 이 중 45년, 35년을 근무하신 분도 있다. 이렇게 오랜 경력을 가지신 분들이 변화하는 교육에 대해 배우려는 자세로 시간과 돈을 들여 매년 학술대회에 참가하시는 것을 보면 마음 한 켠에서 존경으로 말미암은 박수를 보내게 된다.
학술대회 강의들은 한국어와 문화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다양한 컨텐츠들을 이용해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작년 학술대회에는 유아,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누어진 교과과정 지도에 관한 강의들이 많았는데 올해에는 노래와 드라마, 동영상, UCC, 인터넷, 전통놀이, 종이접기 등을 한국어와 문화 교육에 접목시킨 강의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나는 선택식 강의 중 5개를 골라 들었다. 먼저 강원대 류승렬 교수님의 ‘UCC를 이용한 한국역사교육’은 중고등학생 교육에 접목시키면 좋을 것 같았다. 자칫 어렵고 따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교육을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게 함으로서 수업에 적극성을 갖게 한다는 것과 가장 좋은 것은 아이들이 만들기 때문에 눈높이 교육이 용이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UCC를 이용한 역사교육을 1년 정도 실행한 교장선생님의 경험담도 들을 수 있었다.
다음에 참여한 강의는 ‘한국어 교과과정’이었다. NAKS에는 14개 지역협의회가 있는데 그 중에서 ‘동북부지역협의회’가 2년에 걸쳐 제작한 <한국어 교과과정> 책은 교사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보였다. 사실 다음날 오전에 있었던 심포지엄에서 NAKS 회장이 표준교과과정 확립과 교사 전문성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구체적이 내용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NAKS가 30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한 지역협의회에서 했다는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3개의 강의는 모두 시조에 관한 것이었다. 많은 강사들 가운데 ‘마크 피터슨’이란 이름이 눈에 띄었는데 주제가 ‘시조’였다. 미국인이 한국 시조에 대해 강의한다? 반신반의 하면서 들어간 강의실에서 마주한 교수님은 유창한 한국어로 2시간 30분을 막힘없이 이끌어갔다. 일본시조인 Haiku가 미국 교과과정에 자리잡은 것 처럼 한국의 시조가 미국에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그 분의 목표였다. 그리고 “한국학교 교사들이 이 일에 앞장서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라는 말에 모두가 공감하게 되었다.
대회 중에 보았던 아이들의 합창과, 전통공연, 말하기 대회는 교육으로 인한 가능성과 보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특히 뉴질랜들에서 온 학생을 제외하고 미국 내에서 뽑힌 5명의 학생 중 콜로라도 대표로 나간 예림이는 아주 자랑스러웠다. 대상 한 명에 금상이 다섯명이었는데 교사의 도움없이 혼자만의 실력으로 받은 금상이라 더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훌륭한 교사에게는 교과서가 없다.”라는 말이었다. 여러명의 강사가 공통되게 언급한 말이었는데 교육의 주체가 교과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교과서는 계속 새롭게 나와야 하고, 교사는 그 교과서 안의 교육내용이 머릿속에 다 들어있어서 책 없이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상황과 수준에 맞게 언제 어디서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사가 좋은 교사라는 것이다. 얼마큼의 내공이 쌓여야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공감하며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속 시원히 불어오던 샌프란시스코의 바람처럼 내 마음 한켠에도 설레임의 바람이 불었다. 주어 모은 구슬들을 잘 꿰어 제대로 값어치를 하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