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선순환

2025-03-07     김현주 편집국장

지난 주말 덴버 신학교에서는 장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행사가 있었다. 장애를 인내하고 끈기를 보여준 이들을 응원하고, 재정적인 격려금 및 장학금을 제공했다. 행사에는 시각장애, 지체장애, 자폐, 다운증후군, 뇌성마비 등의 장애를 가진 100여명의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자리했다. 한인 뿐 아니라 미국, 중국, 러시아,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들이 참석했다. 지난 20년 동안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 장애인에게 장학금과 후원금을 전달하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우리가 미처 손 닫지 못한 곳까지 보듬어주니, 여간 훈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매년 행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문득 지난 목요일, 둘째 아들이 방과 후 저녁시간에 다시 학교를 간다며 양복을 입고 나왔던 일이 생각이 난다. 프롬 파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슈트를 입고 학교를 가냐고 물었더니, 장애 친구들과 한 팀이 되어 닷지볼 게임을 하는데, 아들이 코치를 맡았다고, 그 역할에는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규칙을 알려주었다. 몇시간 후 아들은 자기 팀이 이겼고, 팀 친구들이 함께 마련한 후원금을 지정된 장애 친구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처음 집을 나섰을 때는 마냥 놀 생각에 들떠 있었던 얼굴이, 돌아왔을 때는 뭔지 모를 감동과 뿌듯함이 베인 표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다음 달에 있을 이벤트에도 친구들과 함께 참가하기로 했단다.

이처럼 나눔은 단순한 물질적 기부를 넘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작은 불씨가 된다.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나눔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지난 3일 월요일 기초생활수급자인 90대 할머니가 나라에서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며 행정복지센터에 3백만원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93세 할머니는 대전 월평2동 행정복지센터에 찾아가 하얀색 봉투를 건넸다. 할머니는 “내가 나라에 도움을 준 적은 없지만, 나라가 나를 잘 돌봐줘서 늘 고마웠다. 큰돈은 아니지만 힘든 환경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봉투 안에는 할머니가 수년 동안 모은 돈으로 짐작되는 3백만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 할머니는 과거 대전에 있는 한 대학교에도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전달했다고 한다.

지난달 11일경 광주 북구 신안동의 4층짜리 빌라 2층에서 화재가 발생했었다. 소방대원들은 인명 수색 과정에서 연기가 가득 찬 건물 내 응답이 없는 6개 세대의 현관문을 강제로 개방했다. 늦은 밤이라 잠이 들었거나 연기 흡입으로 인한 추가 사상자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후 주민들이 소방 당국에 강제 개방으로 파손된 현관문 수리 비용을 요청했다. 고민끝에 소방서 측은 광주소방본부 예산으로 수리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피해는 화재가 발생한 세대 주인의 화재보험으로 배상하지만, 이번 사고에서는 불이 난 세대의 집주인이 사망했고, 다른 세대 주민들도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소방 당국이 가입한 행정배상 책임보험으로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보험은 소방관의 실수나 위법 행위로 인한 재산 피해에만 적용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의 기부 문의가 이어졌다. 수리비 전액을 대신 내주겠다는 시민과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성금을 기부하겠다는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소방관을 위해 영양제를 지원하고 싶다는 기업체도 등장했다.  

작년 12월 마지막 날, 서울 성북구 월곡2동 주민센터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 쌀을 보내드리기 어렵게 됐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2011년부터 14년간 20㎏ 쌀 3백 포를 형편이 어려운 동네 주민들을 위해 보내온 익명의 기부자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그동안 익명의 기부자가 보낸 쌀 무게만 총 84t(4200포), 시가로 2억2천만 원 정도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부 중단 소식에 주민센터에는 하루에도 수십 통의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기부자가 어디 편찮으신 거냐, 혹시 기부 때문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건 아닌지 걱정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취지에 공감한 주민들과 금융기관, 동네 마트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 결과, 보름 만에 10㎏짜리 백미 3백 포가 모였다. 얼굴 없는 천사가 매년 기부한 쌀을 이번에는 주민들이 똑같이 마련한 것이다.

90세를 앞둔 양한종씨 부부는 지난 달 국립암센터에 2억원을 기부했다. 양씨는 “국내 유일의 국가 암 관리 기관인 국립암센터 발전에 보탬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나눔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고 했다. 이어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양씨는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서울 사랑의열매)의 역대 두 번째 ‘아너소사이어티 오플러스(opulus)’ 회원(10억원 이상 기부자)이다. 지난해 7월에는 탈북민들이 정착하도록 돕는 데 써달라며 사랑의 열매에 10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해방 후 아버지·큰형의 월북으로 대전 판잣집에서 홀어머니, 동생들과 함께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다. 15살에 상경해 미군 부대 심부름꾼으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이후 1964년 다방 사업을 시작했고, 1970~80년대 서울 중구에서 클래식 음악 연주 주점으로 유명했던 ‘산수갑산’을 운영하는 등 사업가로 성공했다.

이 외에도 세상에는 많은 기부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여건을 떠나 나눔을 실천하며 세상에 따뜻한 빛을 더했다. 도움을 받은 이들이 또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나눔의 선순환’을 만들어 가고 있다. 결국, 나눔은 특정한 사람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문화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