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손가락, 무거운 상처

2025-02-21     weeklyfocus

한국에서 25세 배우 김새론씨가 자살했다. 김씨는 지난 주말 성동구 성수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홉 살에 영화 ‘여행자’(2009)로 프랑스 칸 영화제에 진출한 최연소 대한민국 배우였고, 영화 ‘아저씨’(2010)로 628만 관객을 모았던 재능있는 배우였다.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생전 고인을 향했던 지나친 비난 여론을 비판하는 자성과 애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늦었다. 악플은 또 한명의 젊은이를 죽였다. 

김새론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해왔다. 그러다가 2022년 5월 음주 운전을 하다 가드레일과 변압기를 들이받아 경찰에 적발됐다. 벌금 2천만원을 선고받은 김새론은 연기 활동을 멈추고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 재판에서 생활고를 호소했던 김새론은 자숙 기간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악플러는 “벌어 놓은 돈이 얼만데 생활고”냐고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김씨는 배우 생활로 번 돈을 모두 가족에게 줬고, 원래 살던 아파트도 소속사를 통해 임차한 것이었다. 넷플릭스 ‘사냥개들’(2023)에서 주연 ‘차현주’ 역으로 재기를 시도하려는 김씨에게 여론은 냉담했다. “존재 자체가 민폐” “왜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고 하느냐”고 했다. 제작진은 촬영을 멈췄고 고인은 자진 하차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에는 연극 ‘동치미’를 통해 복귀를 타진했으나 비난 여론에 부딪혀 자진 하차했다. 그러나 활동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하고 지난해 11월 저예산 영화 ‘기타맨’ 촬영을 완료했고, 이름도 김새론에서 ‘김아임’으로 개명하며 복귀를 타진했다. 영화 ‘기타맨’은 오는 5월 개봉한다. 고인의 유작(遺作)이 됐다.

악플로 생을 마감한 유명인들은 많다. 2008년 10월 최진실은 남편과의 이혼 후 악성 루머가 확산되면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19년 가수 설리는 지속적인 악플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다가 25세의 나이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가수 구하라는 전 남자친구와의 사생활 유출 협박 사건 이후 심각한 악플에 시달리다 절친 설리가 사망한 몇달 후 2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영화 기생충의 배우 이선균도 악플러들이죽인 대표적인 인물이다. 경찰 조사 결과 마약 투약 혐의는 무혐의로 밝혀졌지만, 그는 언론과 악플러들로부터 마녀사냥식의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했다. 

우리가 살면서 미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해를 받을 때면 난감하고 억울하다. 몇 번 함께 밥을 먹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연인 사이가 되고, 융자를 받으러 은행에 가면 이미 망한 사람이 되어 있거나, 정기검진 받으러 간 병원에서 마주치면 사망설까지 나도는 동네가 좁은 이민사회이다. 그나마 이러한 소문들은 입으로 전해지는 에피소드에 불과해서 오히려 웃으면서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댓글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가 힘들다. 글로 적혀지고 읽혀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단순한 입소문과는 상처의 무게감이 다르다. 특히 한국 사회는 댓글의 영향력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 한국의 주요 방송사들은  뉴스 시간을 아예 댓글에 의존하는 코너까지 생겼고, 댓글이 달린 횟수나 내용에 따라 기사의 중요도를 파악하기까지에 이르렀다. 

필자 또한 덴버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라온 비방 글의 주인공이 된 적이 있었다. 23년전, 지금은 문을 닫은 한국일보 덴버지사에서 근무할 때였다. 동네에는 9개의 신문사가 있었는데, 그 중 규모있는 신문사의 웹사이트 게시판에는 동네 신문사들을 비방하는 글로 가득 차 있던 적이 있었다. 그 신문사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른 신문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급기야 피해를 본 언론인들은 연합해서 법적 소송까지 준비했는데, 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글을 올린 IP주소가 하나였던 것이다. 즉 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꾸준하게 경쟁사들을 향한 비방의 글을 올렸다는 얘기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했다. 비방 악플도 해본 사람이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보니 악플을 달아 본 사람들끼리 악플을 이어간다. 

나종호 미 예일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수하거나 낙오된 사람을 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흡사 거대한‘오징어 게임’ 같다고 했다. 또,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 명예교수는 “악플은 칼로 한 번씩 사람을 찌르는 행위”라며 “이런 상황에 놓인 유명인은 어마어마한 무기력과 공포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김씨 자살에 대해“한국의연예산업은 완벽을 요구하고 스타에 과도한 압박을 주고 있다”며 일침을 놓았다.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를 향한 악플도 심각하다. 가볍게 누르는 별의 갯수는 피땀으로 일궈낸 가게에 치명적이다. 악플은 단순한 의견 표출이 아니라, 때로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가 된다. 익명성에 기대어 쉽게 던지는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우리는 수많은 비극을 겪으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왔지만,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악플로 인해 희생된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구조적인 문제임을 시사한다. 법적 규제 강화, 플랫폼의 책임 의식 제고, 개인의 윤리적 성찰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인터넷상에서의 책임감 있는 발언 문화가 자리 잡지 않는 한, 또 다른 누군가가 악플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이쯤되면 댓글 윤리위원회라도 만들어, 악플러들의 얼굴을 공개하는 방법은 어떨까. 이제는 단순한 애도가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다.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