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전쟁, 트럼프 vs 콜로라도
콜로라도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단단히 미운 털이 박힌 주이다. 트럼프가 5년 전 바이든과 격돌할 때도 콜로라도는 확실하게 바이든, 즉 민주당이 장악한 주였다. 그런데 그때는 콜로라도 뿐만 아니라 네바다주와 아리조나주도 민주당의 바이든을 선택했기 때문에 콜로라도의 색깔은 뭍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미 중서부 지역에서 민주당을 선택한 곳은 콜로라도와 뉴멕시코 뿐이었다. 그런데다 뉴멕시코의 경우는 5%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고, 콜로라도의 경우는 10% 이상의 차이로 민주당이 공화당을 이겼다. 매번 결과가 이렇다보니 트럼프의 입장에서 보자면 콜로라도가 얄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콜로라도는 트럼프가 싫어하는 것들이 아주 많다. 우선 남성과 여성만을 인정한다는 성 가치관을 가진 트럼프로서는 동성연애자인 콜로라도 주지사가 달가울 리 없다. 또, 당선 전부터 자신의 이민자 추방 정책에 강력한 불씨를 지폈던 베네수엘라 갱단의 범죄도 오로라 시에서 발생했으며, 낙태와 마리화나 합법주 라는 점도 트럼프의 정책과는 정반대의 것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 대통령의 불편한 속내는 취임하자마자 콜로라도에 쏠린 것 같다. 덴버소재 한 고등학교에서 여학생 화장실을 모든 젠더들이 사용할 수 있게 개조한 것에 대한 진상조사를 천명했다. 이 뉴스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필자와 같이 의아했을 것 같다. 대통령이 되고 다른 일로도 눈코 뜰새 없이 바쁠텐데 시골 고등학교 화장실까지 간섭하다니. 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자신의 임기 중 최우선시 하겠다는 ‘불법체류자 추방’공략은 취임하자마자 콜로라도를 겨냥했다. 지난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콜로라도 오로라에 위치한 버클리 우주군 기지(Buckley Space Force Base)를 임시 이민자 구금 및 처리 시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취임 일주일 만에 덴버 버클리 기지가 ICE에 기지를 개방한 것이다. 이에 따라 ICE는 기지 내에 임시 작전센터, 대기 구역, 그리고 구금 및 처리 시설을 구축해 이민자들을 수용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측 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버클리 기지가 대규모 추방 작전에 이용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의 기개를 막을 방도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콜로라도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상식적으로 불법 체류자들은 추방 정책이 한창 진행 중인 지금, 당연히 숨어 있어야 하는데, 갈수록 트럼프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론 트럼프의 밀어붙이기 식에 대적할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콜로라도에는 그럴 만한 주 법이 존재한다.
콜로라도에서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따른 불법 체류자 체포가 어려운 주요 이유는 이렇다. 첫째는 주와 연방정부 간 권한 문제이다. 이민법 집행은 연방정부의 권한에 속한다. 그러나 콜로라도 주에서는 연방 ICE의 요구에 협조하는 것을 제한하거나 거부하는 이민자 보호 도시(sanctuary city)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정책은 주내 경찰이 이민법 집행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 참고로 sanctuary city 개념은 이민자, 특히 서류 미비 이민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연방 이민법 집행에 협조하지 않거나 제한된 협조를 하는 도시를 지칭한다. 덴버시는 sanctuary city의 대표적인 도시로, 2017년에 서류 미비 이민자를 보호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볼더와 아스펜 역시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 이상, 이민자 신분 문제로 법 집행 기관이 개입하지 않는다. 둘째는 헌법적 문제이다. 연방정부가 주 정부에 특정한 법 집행을 강요하는 것은 미국 헌법의 ‘반강제 원칙(anti-commandeering doctrine)’에 위배될 수 있다. 이 원칙에 따라 콜로라도 주 정부는 연방 정부의 법 집행 요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셋째는 법원 판결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발행된 일부 이민 관련 행정명령들은 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거나 집행이 일시 중단되었다. 이는 법적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으며, 콜로라도 주 정부가 해당 명령에 따르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및 사회적 반발이 크다는 것이다. 콜로라도는 이민자 커뮤니티가 크고, 이민자 권리를 지지하는 여론이 강하다. 그래서 콜로라도 정치인들은 연방의 강경한 이민 단속정책에 협조할 경우, 주내 지지층의 반발이 염려스럽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콜로라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른 불체자 체포가 타주에 비해 복잡하고 어렵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월 21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 동안 미국 주요 도시에서 약 5,845명의 불법 체류자를 체포하였으며, 국토안보부는 군 수송기를 이용해 과테말라, 에콰도르, 브라질, 콜롬비아 출신 이민자 등 약 7,300명을 추방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콜로라도에서도 이러한 추방 작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특히, 더글러스 카운티 커미셔너 위원회는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 이민자 추방 계획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으며, 이는 지역 차원에서 추방 작전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콜로라도주 내에서 정확히 몇 명의 불법 이민자가 체포 혹은 추방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는 버클리 기지를 오픈한 지 6일 째인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법 이민자 단속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이민자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교회나 학교 등 전통적으로 단속이 제한되었던 장소에서도 단속이 이루어지고 있다 보니, 긴장감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주 정부의 법적 보호와 지역 사회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트럼프 정책의 실효성에 생채기가 나면서, 기대했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앞으로 콜로라도가 이러한 압박 속에서 어떻게 주권을 유지하며 이민자 커뮤니티를 보호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