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산불

2025-01-17     weeklyfocus

  LA를 집어삼킨 역대 최악의 산불이 일주일이 지났지만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소방당국은 1천대가 넘는 소방차와 1만명 이상의 인력을 투입해 강풍이 들이닥치기 전에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 안감 힘을 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캘리포니아에서는 서부 해변의 부촌 퍼시픽 팰리세이즈에서 발생한 일명 ‘펠리세이즈 산불’을 비롯해 LA 카운티를 중심으로 4건의 산불이 발생해 160 제콥킬로미터를 태웠으며, 지금도 타들어가고 있다. 서울 면적의 삼분의 일이 넘는다. 산불이 계속 되면서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14일 현재, 사망자 24명, 실종자도 23명으로 늘어난 상태이다. 불에 탄 건물도 1만채를 훌쩍 넘어 1만2천채에 달하고, 거주자 15만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졌으며, 7백명 이상이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이번 산불로 인해 1,500억 달러의 피해액이 추산되면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재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피해가 컸던 지역은 알타데나와 퍼시픽 펠리세이즈다. 알타데나는 과거 흑인 중산층 가족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던 지역이며, 퍼시픽 팰리세이즈는 초부유층이 대서양을 내려다보는 절벽에 저택을 지은 곳으로, 할리우드 스타들이 거주하는 고급 주택가로 유명하다. 힐튼 호텔의 소유주인 패리스 힐튼과 제임스 우즈, 멜 깁슨, 맨디 무어와 앤서니 홉킨스, 죤 굿맨, 바이든의 차남 헌터 바이든, 그리고 박찬호 선수의 집도 전소되었다. 일부 부자들은 자기 집을 지키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소유한 건물을 지키려고 민간 소방 업체까지 동원한 것이다. 퍼시픽 팰리세이즈에서 대형 쇼핑몰을 소유하고 있는 억만장자 릭 카루소는 이번 산불 사태 때 애리조나주의 사설 소방대를 부르고 개인 물차를 동원했는가 하면, 부동산 투자 회사 오너인 키스 와서먼도 “우리 집을 보호할 사설 소방대를 구한다. 비용은 얼마든지 지불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전체 산불 진화가 우선인 각 지방자치단체 소속 소방관들과 달리 사설 소방 업체는 고객의 건물을 불길에서 보호하는 것이 임무다. 이들은 산불이 건물로 옮겨붙지 않도록 건물 주변의 나무 등 인화물질을 제거하고 화염 방지제를 분사하거나 환기구를 화재 방지 테이프로 밀봉하는 업무 등을 수행한다. 비용은 만만치 않다. 민간 소방관 20명과 소방차 4대로 구성된 팀을 고용하려면 하루에 1만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이번 산불은 초호화 주택이 밀집한 지역뿐만 아니라 교사, 간호사, 배관공 등 일반 중산층이 거주하던 지역까지 삼켜버렸다. TV에 얼굴을 비친 실비아 스위니 부부는 샌가브리엘 벨리의 언덕 기슭에 위치한 침실 3개짜리 집을 지난 2009년 78만 달러에 구입했다. 올해 칠순을 맞은 그들에게 이 집은 노후를 위한 안전자산이었다. 2023년 기준 이 집의 가치는 160만 달러로 두 배 이상 올랐지만, 이번 산불로 그들의 집은 우편함만 남긴 채 모두 불에 타버렸다.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이 노부부들의 사연만큼 절절했다.
 보험에서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여의치 않다. 문제는 이번 산불 피해자들의 주택 보험 가입률이 100%가 아니라는 점이다. 보험 회사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하면 임시 거처 마련은 물론 생활비, 재건축비 등 모든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캘리포니아 보험부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0년과 2022년 사이 보험회사들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280만건의 주택 소유자 보험을 갱신하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캘리포니아주 상위 12개 보험사 중 7개사가 새로운 보험을 내놓지 않거나 기존 정책을 갱신하지 않음으로써 보장 범위를 줄였다. 보험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재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불부터 끄고 봐야한다는 생각에 부자들은 사설 소방관을 투입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교정갱생부는 죄수 939명까지 이번 산불 진압에 투입시켰다. 이와 관련해 여러 논란이 들끓고 있지만, 진화를 위한 급박하고도 처절한 분위기는 충분이 느껴진다. 죄수들은 화재 저지선을 긋고 불에 타는 물건을 치워 화재 확산을 느리게 하는 역할을 하며, 호스 등 진화 장비는 사용하지 않는다. 화재진압 업무에 직접 투입될 경우 하루 일하면, 복역 일 수가 이틀 줄어드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곳곳에서 이재민들을 위한 기부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 ‘원초적 본능’으로 유명한 배우 샤론 스톤과 ‘몬스터 볼’ 등에 출연한 배우 핼리 베리는 옷과 신발, 가방 등을 기부했다. 패리스 힐튼도 피해 주민을 위한 ‘긴급 기금’ 모금을 시작했다.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의 집을 내주고 음식을 제공하는 등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가수 비욘세는 250만 달러의 기부금을 쾌척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LA 지역에 소방관 60명을 보냈으며,  온타리오, 퀘벡, 앨버타 등에서도 소방관을 동원해 추가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도 소방관들을 캘리포니아에 파견했다.
 이번 산불은 단순히 자연재해를 넘어, 인간의 삶과 사회적 구조, 그리고 재난 대비 시스템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유층과 중산층, 그리고 취약계층 모두가 피해를 입었지만, 대응과 복구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원 분배의 불평등은 추후 사회적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후 변화로 인해 산불의 빈도와 강도가 점점 증가하는 상황에서, 재난 관리 체계와 보험 정책의 개선이 시급하다. 
동시에 이웃을 돕기 위해 나선 기부자들과 국제적인 지원은 재난 속에서도 인간애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산불은 우리 모두가 직면한 기후 위기의 경고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협력과 각 개인의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는 순간이다. 우선 하루빨리 산불이 진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