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송이 그립다
어느덧 2024년의 마지막 달이 찾아왔다. 거리마다 반짝이는 전구와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된 메트로 덴버 지역의 풍경은 아름답다. 하지만 이 화려함 속에서도 나는 문득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냈던 소박한 크리스마스를 떠올린다.
그 시절, 고향에서 경험했던 크리스마스는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순수하고 따뜻했다. 특별히 마음에 남는 기억은 눈 내리는 이른 새벽, 교회 청년들과 함께 떠났던 새벽송이다. 어둠 속에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집집마다 찾아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을 불렀다.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도, 장갑 속의 손이 시려도, 찬송가의 멜로디가 추위를 잊게 했다.
찬송이 끝나면, 집주인이 문을 열고 나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대원들에게 과자 봉지를 선물로 주었다. 마지막으로 새벽송 방문을 받은 집에서는 대원들을 집 안으로 초대해서 따뜻한 떡국과 차를 대접해 주었다. 특히 눈에 빠져 양말까지 젖어버린 발을 따뜻한 화롯불에 녹이며 웃고 떠들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시절의 시골은 단지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아름다웠던 공간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런 소박한 풍경은 점차 사라졌다. 이제는 도시화된 거리에서 새벽송 대신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이 크리스마스의 배경음악이 되었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는 외형적으로는 화려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정성과 따뜻함은 점점 옅어지는 듯하다.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역사와 종교,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끼쳐 온 특별한 날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 날은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종교적 경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문화적 축제로 자리 잡았다.
크리스마스의 역사적 기원
크리스마스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예언과(사7:14) 역사적 사실(마1:18-25; 눅2:1-7)이 분명하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님의 출생일이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 크리스마스는4세기경 로마 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교황 율리우스 1세가 예수님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공인하면서 현재까지 정설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로마에서 12월 25일은 태양신(Mitra)을 숭배하던 이교도의 축제일이었다. 기독교는 이 날을 통해 이교도와의 융화를 도모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빛이심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 후 중세 유럽을 거치면서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성격과 함께 민속적 요소를 흡수했다. 지역에 따라 다양한 전통과 풍습이 결합되었고, 19세기에는 산업혁명과 함께 크리스마스가 선물 교환과 가족 모임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카드와 트리 장식이 유행하였으며 현대적 크리스마스의 토대가 되었다.
크리스마스의 본질
기독교적 관점에서 크리스마스는 구원과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구속과 자비를 베풀기 위한 사건으로 해석된다. 이로 인해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신자들에게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신앙적 성찰과 감사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크리스마스의 종교적 의미는 점차 퇴색되고 있다. 상업화와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예배와 기도가 아닌, 소비와 오락 중심의 행사가 크리스마스를 대체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 신자들에게 아쉬움과 경각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현대 사회에서 크리스마스는 오늘날 종교적 축제를 넘어,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첫째, 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전 세계 소비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는다. 소매업계는 이 기간 동안 매출의 상당 부분을 달성하며, 선물, 장식, 음식 등 다양한 산업이 성장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지나친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둘째, 사회에 영향을 주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연대와 나눔의 가치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 등 따뜻한 공동체적 정신을 되새긴다.
셋째, 문화적인 통합을 이루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밖에서도 하나의 문화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기독교의 영향이 약한 나라에서도 종교적 배경보다는 연말의 축제 분위기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 주고 있다.
종교성과 상업성의 갈등
21세기의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의미와 현대적 축제 문화가 혼재된 복합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한편으로는 희망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친 상업화로 인해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본질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소비 축제가 아니라, 경건한 믿음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날의 의미를 잊지 않고, 진정한 감사와 나눔과 사랑의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우리 삶에 구원과 희망과 공동체의 가치를 일깨우는 날이다. 우리가 어떤 형태로 이 날을 맞이하든,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을 기억하며 서로를 사랑하고 돕는 일이야말로 크리스마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그래서 만남과 축복과 따뜻함이 있었던 새벽송이 그립다.
홍해 선교회
조완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