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삶

2024-12-13     weeklyfocus

“너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제가 목사 후보생이었을 때 노회 목회 준비 위원회의 어느 미국 목사님이 제게 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한인교회에서 제가 맡은 전도사 사역에 대하여 들으시고 의도적으로 쉼을 가지라고 조언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특히 일주일에 하루는 꼭 쉼을 가져야 하는데 그 때에는 목회에 관련된 그 어떠한 사람도 만나지 말고 전화도 받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위급상황이거나 꼭 나를 필요로하는 상황이면 어떻게 하느냐 라고 질문을 드리니 저에게 하신 말씀이 꼭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일을 해결해 주실 것인데 꼭 내가 아니면 안되는 것처럼 내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나”라는 존재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더 이상 객관적인 진리는 없고 내가 원하는대로, 내 기분이 내키는대로, 나의 마음대로 행동하라고 세상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질서가 무너지고 갈등이 쌓여지고 혼돈의 세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최근에 불거진 한국의 교단 침해 사건들을 보십시오. 내 자식만 귀하고 교사나 학교가 오직 자기 자식만 우쭈쭈 해줘야 한다고 믿는 부모들이 학교에 찾아와 해당 선생님에게 폭언을 하거나 괴롭히는 사건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교의 지도부, 임원들은 자기 자신에게 불편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오히려 선생님들에게 참으라고 하며 이러한 사건들을 덮으려고만 하는 모습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 선생님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나만 생각하고 나만 옳고 내 자식만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뉴욕에서는 한 남성이 미국의 최대 의료보험 회사인 United Healthcare CEO 를 총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지난 월요일 채포되었습니다. 왜 이러한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조사해 봐야 하겠지만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이 CEO 가 AI Program 을 개발해 환자들이 신청하는 많은 보험 해택 신청을 자동으로 거절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피의자가 직접적으로 보험 거절을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자기 자신만이 이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적인 살인을 행했을 것입니다.

또 지난 주, 한국에서는 믿어지지 않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수습하려고 하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많은 혼돈이 빚어지고 있는지 굳이 설명을 안드려도 다 아실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고 봅니다. 대통령은 자기만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엄령을 선포해 자기와 생각이 다른 자들을 통제하려고 한 것입니다. 야당들도 자신들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일은 한국이건 미국이건 어디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버릇없는 아이의 부모, 소비자들을 우습게 아는 기업 총수, 자기 스스로 정의를 구현한다며 범죄를 행하는 사람들,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이든 감행하는 정치인들. 하지만 우리도 우리 욕심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살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생각하는 일상 가운데도 “나” 중심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합니다.
C.S. Lewis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고참악마인 ‘스크루테이프’가 신참악마인 ‘웜우드’에게 31통의 편지로 조언하는 내용의 책입니다. 그 가운데 교회에 열심히 참석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하는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스크루테이프는 사람으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지 못하면 오히려 그 사람이 자기 자신에 맞는 교회를 찾아가도록 유혹하라고 조언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예배 스타일, 찬양 스타일, 설교 등등을 찾아가도록. 이러면서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모여 다른 사람들, 다른 교회를 비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예배와 어떤 찬양을 기뻐하실런지 보다 내가 더 좋아하고 내가 더 즐길 수 있는 예배를 찾는 것은 결국 “나” 중심의 삶이 된다는 것이지요.

전에도 이 컬럼을 통해 나눴지만 죄의 근본은 참된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내가 내 삶의 주권자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고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며 겸손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자신을 한없이 깎아내리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참된 겸손의 삶은 내 자신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겸손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만일 노력으로 된다면 내 노력으로 됬다고 우리는 다시 나 중심의 삶으로 돌아갈테니까요. 

겸손의 삶은 내 노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노력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분은 진정으로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영원무궁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당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삶을 사시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고 세상 중앙에 계시지 않고 변두리에, 가장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처참한 방법으로 죽음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우리가 높여지기 위하여 낮아지셨습니다. 이 분을 믿고 의지해야 바로 참된 겸손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성탄의 메시지입니다.

혼란스러운 오늘날, 성탄의 소망을 가지고 나 중심의 삶이 아닌 참된 겸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참빛교회
유지훈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