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고 있는 이민사회
미국 대선 직후 한인 일간지를 중심으로 한인 유권자들이 공화당을 지지한 이유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중 “트럼프를 지지한다기보다는, 민주당의 정책이 싫었다”라는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많은 한인들은 흑인과 히스패닉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민주당 집권이후 각종 범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신고를 해도 범죄자들이 당당한 모습으로 경찰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당이 내세운 정책들은 취지는 좋지만 악용 사례가 많아, 결국 피해는 장사하는 한인들에게 돌아왔다는 것이다.
두번째 의견은,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의 강경 이민정책에 찬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미국에 와서 합법 체류신분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일을 했고, 간신히 영주권을 따고 시민권을 획득하는데 10년 이상은 족히 걸렸다. 30년이나 걸렸다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입장을 겪었기 때문에 강경 이민정책에 반대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생각도 물론 들 것이다. 하지만 합법 이민자들은 주변에 불법 체류자가 너무 많은데다가, 이들은 세금도 안 내고 일도 안 하면서 정부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컸다. 그래서 합법 이민자들은 대규모 추방 정책이 시작되면 당장 일할 사람이 사라져서 타격을 입겠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필요한 과정이라는데 공감했다.
그 외 한인들이 공화당을 지지했던 이유는 ‘성 정체성 교육에 대한 문제점’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종교인이 많은 한인 커뮤니티에선 이번 선거를 앞두고 학교 내 성 정체성 교육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한인 학부모들은 LGBTQ(일종의 동성애 지지 연대 단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수 공교육에까지 넣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보니 한인 학부모들은 민주당이 정치를 위해 소수자 이슈를 이용하는 것이라며 거부반응을 일으켰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공화당을 지지하긴 했지만, 막상 트럼프의 등극이 다가올수록 한인사회는 불안하다. 가장 피부로 와 닿는 걱정거리는 불법 이민자 추방 건이다. 벌써부터 덴버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형성된 히스패닉 커뮤니티의 경기는 침체기에 들어섰다. 패더럴 길을 중심으로 불법이든, 합법이든 히스패닉계 커뮤니티가 형성된 지는 30년이 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인들도 많은 비즈니스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 이후 주변 상권은 급격하게 내리막 길을 걷고 있는 분위기이다. 당장 미국을 떠나야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들의 소비 심리를 위축시켰고, 일자리를 구하고자 하는 의욕도 상실시킨 듯하다. 불법 이민은 히스패닉 계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하지만, 한인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타민족 이민자들 또한 불안해하며 대비하고 있다. 영주권자 등 합법 이민자들도 불안감을 느껴 시민권 신청에 나서거나 시민권자와의 결혼을 서두르고 있다는 뉴스가 들린다. 국경 지역에서는 트럼프 2기 취임 전에 난민을 신청하려는 이민자들이 서둘러 난민 자격을 얻으려 하고 있다. 스페인어 라디오와 TV 등은 트럼프 당선인의 이민 정책에 대한 정보를 연일 소개하고 있으며, 이민 변호사 사무실과 서류미비자 지원단체들에는 문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불법 이민자를 범죄와 실업률, 집값 상승 등 사회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하며, 당선되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까지 동원해 대규모로 추방하겠다고 공약했다. 이같은 엄포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초강경 반이민 정책을 예고하면서 이민자 커뮤니티의 불안감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미국에는 영주권을 가진 합법 이민자수가 약 1,300만 명이고 허가 없이 입국한 서류미비 이민자들은 약 1,130만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발표한 미국내 불체자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 출신의 불체자 수는 2023년 1월 기준으로 12만명으로 추산됐다. 이 같은 한인 불체자수는 출신국가별로는 16번째로 많은 것이다. 불체자 수를 국가별로 보면 멕시코가 405만 명으로 전체의 38.6%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엘살바도르 출신이 80만 명으로 두 번째로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인도 72만5,000명, 과테말라 70만 명, 온두라스 52만5,000명으로 3~5위에 올랐다. 또 중국이 37만5,000명으로 6위에 랭크되며 아시아 출신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았고, 7위 도미니카공화국 23만 명, 8위 브라질 20만 명, 9위 베네수엘라 19만 명, 10위 콜롬비아 14만 명 등이었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트럼프의 규제 열정은 하루하루 강렬해 보인다. 자녀가 시민권자일지라도 부모가 불법이면 함께 추방을 추진한다, 영주권자라도 범죄 기록이 있다면 이또한 추방 대상이며, 원정 출산은 전적으로 차단한다 등의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이로인해 이민 사회가 겁에 질려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추방 정책 자체는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이민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트럼프 첫 임기 때 약 150만 명을 추방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그 정도를 추방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첫 임기에만 300만 명이나 내보냈다. 미국은 1950년 대 이후로 한꺼번에 대규모로 추방한 적은 없었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대적인 추방 정책을 단행한다고 하지만, 이를 위한 방대한 구금 시설도 아직 구축하지 못했다. 범죄자와 추방 명령이 이미 내려진 이민자들을 우선으로 추방하겠지만, 불법 체류자를 모두 색출해 내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난 주말, 마이크 존스턴 덴버 시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콜로라도 불법이민자 추방 계획을 막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옥에 갈 의향이 있다며, 트럼프와 맞설 의지를 공식화했다. 다만, 당장 학생들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트럼프가 지난 2017년에 취임하자마자 이슬람교도가 많은 나라 국민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해 공항에서 혼돈이 일어난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유학생들은 트럼프 취임 전에 미국에 들어와 있는 편이 안전하다. 그 외는 지금부터 동요할 필요는 없다. 차근차근 준비해도 늦지 않다.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