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종류의 사람
C.S. Lewis 는 에시이 Present Concerns (현 관심사)에서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 종류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나 자원들이 오직 자기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내게 주어진 자원들이나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용하던지 상관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이득은 물리적인 이득이 될 수도 있고 권력이나 명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대놓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주 교묘하게 남을 이용한다던지 자신의 욕심을 숨기며 행동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평판을 챙기는 것도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남을 위하는 것처럼, 때로는 사회의 공익을 위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계산하며 움직이는 아주 이기적이고 자신 밖에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두번째 종류의 사람은 자신보다 더 큰 일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뛰어 넘는 일이란 하나님의 뜻이 될 수도 있고 진정한 사회의 공익이 될 수도 있고 어떠한 대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이득을 취하지만 절대로 큰 일에 관하여 타협하지 않고 대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입니다. 대의를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또한 그 일을 하고 나면 자신을 위한 시간과 자원들이 남아있기를 또한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세납자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세금을 정직하게 내지만 자신을 위하여 돈이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예는 학생입니다. 더 큰 일을 위하여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자신만의 시간이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이들의 삶은 대의를 위한 삶과 자신을 위한 삶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종류의 사람에 대하여 나누기 전에 많은 종교인들, 기독교인들도 첫 두 종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 생활을 자신의 이득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평온이 될 수도 있고 연줄을 맺을 수도 있고 아니면 물리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상시 보이지 않다가 선거철에만 대교회 예배를 참석하는 정치인들이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또한 자신의 사업채를 위하여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기독교를 자신을 위한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들과는 달리 정말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불우한 이웃을 사랑하고 베풀고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배도 잘 드리고 병든 자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없는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일이 지나면 자기 자신의 삶을 살기에 바쁩니다. 일요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하루, 하지만 나머지 일주일은 내가 사는 하루가 되어 버립니다. 봉사의 시간에는 이웃을 생각하지만 평상시 나를 위해 살기 바쁩니다. 둘로 나눠져 있는 삶을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세번째 종류의 사람은 첫 두 종류의 사람들과는 달리 일치된, 진솔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바울과 마찬가지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일요일은 하나님의 시간이고 나머지는 자신의 시간이 아니라 매 순간 순간을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제물은 전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가치있는 일을 위하여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생활과 회사 생활이 나눠진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회사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마음을 일치가 되어 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고린도전서 10:31, 새번역) 이라는 바울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대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삶이야 말로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은 언제나 불만 속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삶과 자신의 삶이 나눠진 삶을 사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둘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질 수 밖에 없고 그러면 다른 한쪽의 삶에서 만족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이러한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 알 때 그렇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리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우리를 위하여 먼저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기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몸 속에 물 한방울도 남기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쏟아부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c.f. 요한복음 13:1). 이 사랑을 진정으로 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직 이 사랑을 알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다. 이것이 뜻하는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기 위하여, 인정을 받기 위하여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놀라운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의 “사는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