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로 기우는 한인사회 표심
미국 대통령 선거가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오는 11월 5일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는 미국의 제 47대 그리고 60번째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이다. 상원·하원·주지사 선거도 동시 진행되기 때문에 미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선거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 단연 관심사는 대통령 선출이다. 한국에 사는 친지들과 통화를 할 때면 요즘 부쩍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큰일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에 사는 필자보다 더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지대해 보인다.
지난 주말 민주당 대통령 후보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 격차가 부통령 후보 TV 토론 이후 좁혀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일 CBS 주관으로 공화당 J D밴스(40) 상원의원과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60) 미네소타 주지사와의 TV 토론이 뉴욕에서 열렸다. 두 사람 모두 중서부 흙수저 출신에 백인 남성으로 ‘아메리칸드림’을 이뤘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차이점도 적지 않다. 밴스는 명문대를 졸업한 젊은 변호사와 벤처 투자자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반면 월즈는 하원 의원과 재선 주지사까지 지내고도 여전히 ‘옆집 동네 아저씨’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유거브가 이 두사람의 TV 토론 이후 미국 성인 1천7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등록 유권자 사이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48%를 얻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불과 2%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지난 9월 트럼프와 해리스 후보의 첫 TV 토론 이후 실시된 같은 기관의 조사 결과보다 3% 포인트 격차가 좁혀진 것이다. 이는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밴스에게 우호적인 표가 훨씬 많아졌다는 결과에 이른다.
4년 전에도 그랬듯이, 두 후보의 입장은 완전 반대다. 우리같은 이민자들에게 민감한 사안인 이민자에 대한 견해도 첨예하게 다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에 대해 혐오스러운 표현을 여과없이 쓰며, 바이든 행정부 시절 불법 이민자가 급증해 미국 내 치안이 불안해졌다며 맹비난을 연일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면 대통령 취임 당일에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로 불법이민자를 추방할 것이라고도 밝혀왔다. 반면 해리스 부통령은 국경을 통한 범죄 유입은 단속하되, 이민자들이 합법적으로 미국 사회의 정식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길은 열어두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불법 이민자가 아니더라도, 이민자인 우리로서는 이민자 옹호정책을 펼치고 있는 민주당 해리스에 단연 지지표를 던져야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보인다. 아시아계 미국인 유권자들을 대상으로한 올해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 전역 한인들의 민주당 지지율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4년 동안 51%에서 38%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은 경제난을 호소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제대로 된 해결책을 못 찾고 있고 있다는데 있다. 해리스는 주로 트럼프의 ‘인종 차별’ 언사를 부각하는 광고를 방영하고 있을 뿐 정작 필요로 하는 ‘맞춤 경제’ 정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는 취지다.
미 대선 결과를 결정 지을 7대 ‘스윙 스테이트(경합주)'는 크게 민주당이 우세한 친노조 성향의 러스트벨트(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미시간)와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남부 선벨트(조지아·애리조나·네바다·노스캐롤라이나)로 나뉜다.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러스트벨트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하지만 해리스 부통령은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노동자 계층 유권자 지지율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9% 포인트 차이로 앞서는데 그쳐 이전 민주당 대선 후보에 미치지 못했다. 평생 친노조 행보를 보여 왔던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그간 노조와 특별한 관계가 없었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또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노조원 특성상 첫 여성 대통령에 대한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란 점도 고전하는 원인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이 중요 경합주 중 조지아주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캐스팅 보트’로 부상하고 있다. 2020년 미 인구조사에 따르면 조지아주 한인은 약 12만5000명으로, 지난 10년간 32% 증가했다. 선거인단 16명이 걸려 있는 조지아주는 민주당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조지아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지난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에 큰 공을 세우는 등 친민주당 성향을 보여왔지만, 이번 선거에선 상당 수가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민주당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류언론들은 지난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이 불과 1만2천표 차이로 트럼프를 꺾었던 조지아주에서 해리스가 승리하기 위해선 모든 표를 긁어모아야 하지만 한국계 표심이 흔들리는 상황은 큰 적신호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조지아주는 매 선거에서 미국 정치의 향방을 좌우해왔다. 이런 대선 격전지에서 소수계인 한국계의 역할이 커지는 건 두 후보간 지지율이 초박빙일 뿐만 아니라, 한인들의 투표율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콜로라도는 오랫동안 민주당의 텃밭이기 때문에 경합주에 속해본 적이 없다. 주간포커스의 지사가 있는 텍사스는 공화당의 텃밭이기 때문에 이 또한 경합주에 속해 본 적이 없었다. 이 극명하게 대조적인 두 주를 매주 오가면서 필자는 특이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공화당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텍사스로 한인들의 인구가 점점 집중되고 있다. 조지아를 넘어설 조짐도 보인다. 반대로 콜로라도의 한인 인구는 여전히 3만 명 정도에 머물고 있다. 그 이유는 경제에 있다.
조지아와 텍사스주에 한인이 모이는 이유는 정당 보다는, 경제활동을 통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정책들이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한다고 해서 경제가 갑자기 살아나고, 해리스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경제가 금방 기울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해 한인사회의 위상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선거 후에는 한인들의 투표율 결과가 나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개인 모두가 결정권을 가진 '캐스팅 보트'라는 생각으로, 참정권을 성실하게 이행하기를 당부한다.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