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사랑인가요?
풍성한교회 이두화 담임목사
음식을 좋아하십니까? 바로 사랑으로 만든 음식 말입니다! 사랑이란, 나를 배신하거나 상처 준 사람을 끝까지 기다려주고 인내하여 그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받아주는 ‘인내와 포용’이 맞는 걸까요? 아니면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타이르기도 하고, 쓴소리도 하는 ‘채찍’이 맞는 걸까요? 만약 타일러도 고쳐지지 않으면 내 삶에서 도려내는 ‘배제’를 해야 할까요? 도대체 어떤 것이 ‘사랑’인가요?
현대를 사는 우리는 모두 ‘사랑’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와 같습니다. 요리사의 손에 어떤 음식이 주어지든 그 요리사의 역량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듯이 사랑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원하는 음식을 이리저리 조미료를 가미하고 조리하여 만들어 냅니다. 사랑은 이런 것이야!
가령, 동성연애를 지지하는 자들은 차별금지, 혐오 금지라는 것을 가지고 자신들의 성적 취향을 존중해 주라고 합니다. 사랑으로 자신들을 받아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혐오를 혐오하다‘라는 하기도 합니다. 사랑이란 받아주는 거라고 합니다.
반대로 자녀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올바른 성 정체성의 교육을 가르키는 부모들이라면 ‘혐오’가 아니라 올바른 소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반대할 것은 반대하는 것이 맞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배제’한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지금 전쟁 중입니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인내와 포용이 없는 사람인가요? 보복하면 그것은 사랑이 없는 것인가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게 사랑인가요? 난해한 질문입니다. 배제인가 포용인가? 난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랑을 멋대로 요리하는 수많은 요리사의 존재 때문입니다. 왜 자기의 입맛대로 요리하는 걸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 외줄타기와 같이 떨어지거나 걷거나와 같은 이분법적인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매를 들어야 할까? 기다려야 할까?”하는 고민의 순간이 있습니다. 사랑을 깊이 나누는 부부와 형제, 심지어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하고 인정하고 포용해 줘야 하는 순간이 있지만 또 옳은 소리 쓴소리, 채찍을 줘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다 고민이 되는 게 채찍을 주면, 삶에서 도려져 내지는 않을까? 배제를 걱정합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기다리기 지치고 힘들고, 그러다가 가장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란 생각을 가지고 행동에 옮깁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생각하는 행동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요리사이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요리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랑에 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사랑에는 답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것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랑의 방법을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4>“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히브리서 12:6>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기다리기도 하지만 사랑은 징계를 주고 채찍질을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배척과 배제를 불러오는 쓴소리마저 사랑이라는 겁니다. 우리의 고민과 똑같은 고민만 있지 실상 정답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확실한 한 가지는 내가 생각하는 선이 사랑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첫째, 사랑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당신입니다. 내가 참는 이유는 상대방을 위해서입니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지는 이유는 상대방을 위해서입니다. 책망하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입니다. 요리사로 돌아가 보면 음식을 만들어 내는 요리사가 물론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기도 먹지만 자신이 만든 음식은 대부분 먹는 이를 생각하며 만들 듯이 사랑도 먹는 이가 중요합니다. 먹는 이에게 유익이 되는가? 그렇다면 선택은 참고 기다리든, 쓴소리하든지 그 사람에게 가장 유익한 것을 주기 위해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요리를 주지 마십시오. 내가 생각하는 선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가장 유익이 될 음식을 주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둘째, 사랑은 소비입니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때로는 반응이 좋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요리사라면 내 기술을 사용하고 내가 배운 것을 활용하며 음식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그 음식을 맛본 이가 내 입맛에 맞지 않다고 한다고 칩시다. 그 요리사가 갑자기 주방에서 나와서 “나 요리의 길을 그만둘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나요? 내 시간과 열정과 심지어는 기술과 도구까지 온갖 것을 활용해서 사랑을 주었지만 거부한다고 해서 내 인생이 거부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반드시 사랑은 내 것이 소비된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은 인내와 포용도 있지만 책망과 거절 그리고 배제라는 온갖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선이 아닌 오롯이 당신의 가장 유익을 생각한다면, 나를 위해 남기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내 것을 소비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랑의 방법을 행하고 있는 나일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요리를 내 입맛대로 나를 위해 만드는 사람이 아닌, 먹는 사람을 위하여 때로는 쓴 탕약도 만드시지만 때로는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어 주실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도 여러분들을 위해서도 이렇게 행하고 계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