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의“그냥 해”

2024-09-27     김현주 편집국장

 학창 시절에 미국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몇 개 있었다.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그리고 나이키 였다. 콜라는 동네 수퍼마켓에서 사 먹을 수 있었고, 맥도널드 햄버거도 용돈으로 사먹을 수 있는 수준의 가격이었다. 그런데 나이키는 달랐다. 1년 내내 부모님을 졸라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겨우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비쌌다. 물론 지금도 나이키 신발은 비싼 편이지만, 남녀노소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알고 있으며, 누구나 한번쯤은 신어 본 나이키는 현시점 제1의 가치를 갖고 있는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나이키 마저도 불황이라는 뉴스가 필자에게 관심을 끌었다. 

지난 주 갑자기 나이키가 CEO를 교체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1971년에 시작된 나이키 역사에서 CEO는 4명뿐이었을 만큼, 대표 경영인을 자주 교체하지 않는 기업이다. 그래서 4년도 채 경영하지 않은 CEO를 교체한다는 것은 나이키로서는 드문 일이다. 최근 나이키는 올해 상반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 감소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스포츠용품 업계의 전반적인 불황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러닝 열풍으로 호카·온러닝 등 신흥 브랜드는 호황을 누리고, 전통의 라이벌인 아디다스·뉴발란스·아식스 등도 실적이 대폭 개선되며 전성기를 맞았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인데도, 나이키만 부진하다.  

나이키는 일본의 운동화 아식스의 전신인 '오니츠카 타이거'와의 거래 종료로 인해 시작되었다. 탄생 이후 스포츠 종목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스포츠인을 후원하고 협찬하며 성장했다. 이 엄청난 기업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킨 사람은 필 나이트와 빌 바우어만 이라는 육상선수와 육상코치였다. 이 두 사람의 만남과 모험은 나이키를 단순한 스포츠 기업이 아닌 하나의 문화이자 지구인들의 운동에 대한 기본정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필 나이트는 오리건 대학과 스탠포드 대학을 다니며 운동화 마케팅에 관한 논문을 작성했다. 육상선수이자 경영학도였던 그는 1962년 일본을 여행하던 중에 에티오피아의 육상선수 아베베가 착용했던 일본의 운동화 브랜드 ‘오니츠카 타이거’에 주목했다. 시장성이 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이 운동화를 미국에 들여왔고, 당시 육상코치였던 빌 바우어만과 함께 각각 500달러씩을 투자해 블루리본 스포츠 회사를 설립, 미국시장에서 점차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후 육상코치이자 디자이너였던 바우어만은 오니츠카 타이거에 새로운 신발 디자인을 제안했고 그렇게 태어난 운동화가 코르테즈(Cortez) 였다. 즉 나이키의 코르테즈와 오니츠카의 코르테즈는 회사는 다르지만 빌 바우어만에 의해 탄생된, 유전자가 같은 모델이다. 참고로 톰행크스가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신고 달렸던 코르테즈는 나이키 브랜드의 성공적인 시작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브랜드를 고민하던 블루리본 스포츠는 1971년, 당시 직원이었던 제프 존스가 꿈에 봤던 승리의 여신 니케를 추천했고, 니케의 미국식 발음인 ‘나이키’로 브랜드 명을 확정했다. 그리고 디자인을 전공한 여직원에게 로고 디자인을 의뢰했고 스포츠 브랜드 역사상 가장 성공한 나이키 스우시(SWOOSH) 로고가 만들어졌다. 그녀에게 로고 디자인 비로 지불한 금액은 고작 35달러, 이것이 천문학적인 가치의 로고가 된 것이다. 성장을 거듭할수록 나이키의 스타마케팅은 그 규모를 더욱 확대했고, 미국의 4대 프로 스포츠인 농구, 야구, 풋볼, 아이스하키와 강력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며 전 지구적인 마케팅에 돌입했다. 그리고 농구의 마이클 조던, 테니스에 안드레 아가시, 축구의 호나우두, 육상의 마이클 존스 등 각 분야에서 최고의 스포츠 스타들과 함께 하던 나이키는 1996년에 미국 아마추어 골프를 평정하고 프로데뷔를 앞두고 있던 타이거 우즈까지 군단에 합류시키는데 성공했다. 27년동안 골프 황제의 가슴과 양발에 새겨진 나이키 로고만으로도 골프에서 나이키의 존재감은 충분했다. 

나이키는 여전히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다. 그리고 그 명성을 견고히 하기 위해 지난 주 과감한 인사를 단행했다. 존 도나호 현재 CEO는 미국 아이비리그 다트머스대 경제학과를 나와 스탠퍼드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고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드컴퍼니, 이커머스 업체 이베이에서 CEO를 거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2020년 1월 나이키 CEO로 취임한 도나호는 신발 판매 방식을 확 바꿨다. 오랫동안 소매 업체 계약을 맺어온 풋라커, DSW, 메이시스 등에서의 판매를 줄이고, 자사 홈페이지에서 직접 판매하는 비율을 늘렸다. 대면 구매 대신 온라인 구매를 선호하면서 도나호의 전략은 통하는 듯했다. 문제는 코로나가 진정되고 나서도 같은 전략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온라인 판매를 통한 데이터 수집에만 집중하면서 나이키의 상징이던 ‘혁신’과 ‘스토리텔링’이 사라진 것이다. 세상을 놀라게 했던 신제품들이 자취를 감췄다. 도나호의 후임자인 힐은 출발부터 끝까지 오직 ‘스포츠’였다. 힐은 텍사스크리스천대에서 운동학을 전공하고 오하이오대에서 스포츠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내달 새 CEO에 오를 그는 1988년 인턴을 거쳐 나이키에 입사해 2020년 소비자 시장 부문 사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32년 동안 나이키에서만 일했다. 즉 위기의 나이키는 이처럼 '엘리트' 를 내쫓고 '스포츠맨' 을 선택한 것이다. 

나이키, 아직도 그의 명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자칫 방심하면 신생 업체들에 뒤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린 결단이었을 것이다. 미국 브랜드의 자존심인 나이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마저 아디다스를 벗고 나이키 유니폼을 입게 한 그 기세를 몰아 제 페이스를 하루빨리 찾기를 기대한다. 자신들의 캐치프레이즈인 Just Do it!(그냥 해) 처럼, 두려워말고 그냥 시작해보는 것이다.                         
<발행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