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2024-08-30     김현주 편집국장

  시각 장애인 선수는 어떻게 달릴까. 트랙은 하나지만, 뛰는 사람이 둘인 경기가 있다. 바로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가이드 러너’가 함께 뛰는 패럴림픽 시각 장애인 육상 경기이다. 패럴림픽 시각 장애인 육상 경기는 가슴 벅찬 응원의 함성 속에서 하나의 트랙을 두사람이 함께 달린다. 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전력을 다해 달리고, 그 곁에는 이끌어주는 또 한사람이 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능력을 가졌지만, 마음만은 하나로 연결되어 결승선을 향해 달려간다. 지난 2021년 도쿄 패럴림픽에서 필자가 가장 감동 있게 본 경기였다. 

  도쿄 패럴림픽 때는 시각 장애 선수와 가이드 러너의 러브스토리도 화제였다. ‘아프리카의 보석’이라 불리는 섬나라 카보베르데 출신인 시각 장애 육상선수 쿨라 니드레이라 페레이라 세메도(32)가 자신의 마지막 레이스를 마치고 숨을 몰아쉬고 있을때, 그녀의 가이드 러너인 마뉴엘 안토니오 바즈 다 베이가 트랙 위에서 깜짝 프러포즈를 했다. “나와 결혼해 줄래?”라고 말했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자, 그녀는 함박웃음으로 청혼을 수락했다. 이 로맨틱한 프러포즈 광경에 함께 뛴 가이드 러너들이 일제히 환호하는 장면이 중계되었다. 뜨거운박수 속에 둘은 서로를 꼭 껴안으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다. 당시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도 공식SNS를 통해 프러포즈 영상을 소개하며 ‘인생에서도 둘이 함께 달리기를!(May the two of them run together for life!)’ 라면서 이 두 사람을 응원했다.

   가이드 러너는 시각장애인 선수가 올바른 방향으로 안전하게 경기를 마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는 조력자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손을 밴드나 얇은 '테더'로 이어 마치 한몸처럼 달리지만 결승선은 반드시 선수가 먼저 통과해야 한다. 신뢰의 연결고리, 테더에는 물리적 연결을 넘어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 경기는 단순히 누가 더 빨리 결승선에 도달하느냐를 묻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협력과 신뢰, 그리고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힘차게 달리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의 손에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을 통해 끊임없이 소통한다. “곧 코너가 나와”, “속도를 조금 더 내볼까” 비록 앞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 선수일지라도 가이드 러너를 믿고 오직 달리기에만 집중한다. 가이드 러너는 그러한 신뢰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소통하고 함께 달린다. 경기장에서의 시간이 끝난 뒤에도 그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고,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한다.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선 진정한 인간관계, 이러한 공존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아닐까.

  패럴림픽(Paralympic Games)은 장애인 올림픽이다.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패러플리직(Paraplegic)과 올림픽(Olympic)의 합성어로 시작됐지만, 현재 패럴림픽 공식 누리집에는 ‘패럴림픽’은 그리스어 전치사 파라(para 나란히, 함께)와 올림픽의 합성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올림픽’과 동등한 위치에서 나란히 함께 가는 대회라는 뜻이다. 패럴림픽은 나치 독일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신경외과 의사인 루트비히 구트만 박사가 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다가 척추 손상으로 하반신 마비가 된 영국 퇴역 군인들을 돕는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구트만 박사는 불편한 신체로 우울증을 겪는 이들을 위한 스포츠 대회를 생각해냈고 1948 런던올림픽 개막에 맞춰 16명의 휠체어 선수들이 참가한 양궁 대회를 열었다.‘스토크 맨더빌(구트만 박사가 운영하던 병원 이름) 대회’로 맨 처음 명명된 이 대회에는 1952년부터 영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상이 군인들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60년에는 상이 군인뿐 아니라 모든 장애 선수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 23개국 4백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대회로 확대됐다. 이것이 제1회 패럴림픽 대회다. 그러나 패럴림픽이 올림픽과 진짜 ‘동행’을 시작한 것은 1988 서울올림픽 때부터다. 참고로, 이전에는 올림픽과 패럴림픽 개최지가 달랐다. 

  대한민국은 지난 번 도쿄 패럴림픽에 14개 종목에 남자 58명 여자 28명 총 86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금메달 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2개로 종합순위 41위를 기록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올해 한국은 남자 46명, 여자 37명, 지도자 및 임원을 포함한 177명의 선수단을 꾸렸다. 한국은 골볼 배드민턴 보치아 사격 사이클 수영 양궁 역도 유도 육상 조정 카누 탁구 태권도 트라이애슬론 휠체어펜싱 휠체어테니스 17종목에 나서 금메달 5개를 목표로 한다. 탁구 사격 보치아에서 금빛 사냥이 가장 유력하다.

  장애인 올림픽은 이제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로 자리잡았다. 전 세계 장애인 선수들이 기량을 펼치며, 이들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달하고 있다. 육상과 수영, 탁구, 휠체어 농구, 휠체어 펜싱, 시각 장애인 축구 등 다양한 종목에서 짜릿한 경쟁이 펼쳐진다. 장애를 극복하고 스포츠 정신으로 뭉친 선수들의 이야기는 매번 감동을 선사해왔다. 

  필자는 나태해지고, 무기력해질 때마다  패럴림픽을 떠올린다. 저 선수들이 비장애인이었다면 훨씬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 실력도 비장애인보다 월등히 뛰어나 프로팀에 소속되었을텐데 하는 속인의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장애를 넘어선 도전과 감동의 향연은 매번 나를 반성시킨다. 비장애인이 금메달을 땄을 때는 일어서서 환호하고 박수를 치지만, 장애인이 금메달을 따면 눈물이 더해진다. 한계를 넘어서는 용기와 세상을 움직이는 감동이 TV 화면을 뚫고 나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번주 수요일(28일)부터 9월 8일까지 12일 동안 182개국에서 4천여명의 패럴림픽선수들이 프랑스 파리에 모인다. 액션 스타 성룡이 성화 봉송 주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장애인을 넘어 장인이 된 그들의 마법같은 순간을 함께 응원해보자. 그러면서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한번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