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마지못한 퇴장

2024-07-26     김현주 편집국장

   바이든 대통령이 세월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난 일요일 바이든은 대선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경선을 치른 현직 대통령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재선 도전을 포기한 것은 미 현대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올해로 82세인 바이든의 정치 역정은 29세에 최연소 상원의원으로 당선되며 시작됐다. 이후 36년간 상원 의원을 지냈고, 8년간 부통령으로 일한 뒤 미 역사상 역대 최고령(78세) 대통령에 올랐다. 현대 미국 정치에서 가장 길고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바이든의 정치 경력이 놀라운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는 3수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논문 표절 의혹으로 낙마했다. 2008년 다시 당내 경선에 나섰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밀려 실패했다. 다만 그의 상원 경력을 인정받아 오바마의 러닝메이트가 돼 당시 행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냈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출마를 준비했지만 장남 보 바이든이 뇌암으로 사망한 뒤 뜻을 접기도 했다. 그가 드디어 당선된 지난 대선때도 쉽지 않았다. 경선 초기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주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연패하면서 대권 도전이 어렵다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유색인종이 다양하게 포함된 지역에서 승기를 잡으면서 역전을 이뤄내 민주당 후보로 올랐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올랐다.

  그는 임기 초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Chips Act) 등 굵직한 투자 입법을 이뤄내면서 ‘정책 성과’를 내세웠지만 사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유례없는 고물가, 고이율 등으로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고령으로 인한 말실수 등이 이어지면서 재선 가도에 ‘빨간 불’이 켜졌다. 

   무엇보다 바이든의 생체 나이에 따른 인지력 저하 논란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거세졌다. 지난해 6월 콜로라도 미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행사장에서 갑자기 넘어졌다. 경호원 등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자리에 앉은 바이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바이든의 ‘꽈당’ 넘어짐은 처음이 아니다.  2021년 3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2022년 6월에도 자전거를 타다 페달 클립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말실수도 잦았다. 지난 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으로 불렀다. 5월엔 “한국 대통령 김정은을 위한 그(트럼프)의 러브레터들”이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한국 대통령으로 칭했다. 급기야 지난 11일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트럼프 부통령”, 볼로디미르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푸틴 대통령”으로 부르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은 지난달 27일 애틀랜타 CNN 스튜디오에서 열린 바이든과 트럼프의 TV토론이었다. 바이든으로선 ‘대참사’였다. 토론 전만해도 양측 기세는 팽팽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토론 시작 직후 이상한 낌새를 보였다. 잘 들리지 않을 만큼 말에 힘이 없었고, “어, 음”을 연발하며 더듬었다. 멍한 표정, 더듬는 말투 등으로 지지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직후 민주당 내 의원 37여명이 공개 사퇴를 요구하고 배우 조지 클루니와 같은 큰손들이 기부 중단으로 협박했다. 이때까지도 바이든은 꿈쩍 않았다. 그랬던 바이든이 사퇴를 결정하기에는 정치적 동지이면서 민주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정치 거물, 오바마와 펠로시의 ‘변심’이라는 분석이다. 바이든과 오바마는 19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정부 때 부통령과 대통령으로 호흡을 맞추며 ‘브로맨스(bromance)’라는 말까지 나왔었다. 바이든보다 두 살이 많은 펠로시는 오랜 세월 바이든과 의회에서 호흡을 맞추며 정치 여정을 함께해 온 우군(友軍)이었다. 이런 펠로시까지 바이든의 사퇴를 언급한 것이다. 이어 쐐기를 박은 건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이다. 지난 13일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에서 귀에 피가 나는 가운데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불끈 쥔 트럼프의 사진은 이후 지지자에게 영웅 이미지를 심어줬다. 

  바이든은 후보를 사퇴하면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공식 지지했다. 바이든이 사퇴를 발표하자마자 민주당 기부금을 관리하는 사이트인 액트블루(ActBlue)를 분석한 결과 하루만 약 3000만 달러에 달하는 기부금이 모집됐다. 이는 2020년 선거 이후 민주당에 하루 만에 들어온 기부금 액수 중 가장 많은 수준이다.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의 지지율 여론조사도 오차범위 내에 있다. 바이든의 사퇴를 반기는 확실한 증거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직 사퇴 하루만에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것으로 사실상 확실시 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도전에 대한 당내 지지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어서다.  앞서 바이든이 후보직을 사퇴할 경우 대타로 거론됐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 등에 이어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J.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 등도 공개적으로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했다. 여기에다 해리스 부통령의 잠재적 경쟁자들도 지지 행렬에 동참, 당내 뚜렷한 다른 유력 예비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상징적인 당 원로인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까지 가세하고 정치 자금 후원도 쏟아지면서 민주당이 해리스 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모습이다. 검사출신, 유색인종 여성으로 최초로 대통령 후보가 되는 해리스 부통령, 그리고 지난 5월 성 추문 입막음 돈 지급 사건에서 유죄 평결을 받아 '중범죄자'라는 꼬리표를 단 트럼프. 민주당 측은 검사와 범죄자의 대결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고, 공화당은 바이든보다 해리스를 이기는 것이 쉽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사퇴하면서 선거를 불과 4개월 여 앞두고 미 대선 구도는 요동치고 있다. 해리스의 역전이 가능할지, 트럼프의 대세론이 유지될 것인지 흥미진진한 대선판이다. 다만 남은 기간동안, 펜실베니아와 같은 과열 극단정치 테러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길,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통해 미국의 자존심이 세계의 중심에 다시한번 우뚝 서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