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이별을 준비하며…

2024-07-05     김현주 편집국장

   우리 집에는 큰 개가 한마리 있다. 이름은 맥스, 종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나이는 11세, 몸무게는 94파운드 가량 나간다. 10여년 전 남편이 간암으로 투병생활을 할 때, 적적하다며 개를 친구로 삼고 싶어 했다. 맥스의 형제들은 2~3개월때 모두 좋은 가격에 팔렸지만, 5개월이 다 된 맥스는 인기가 없었는지 그때까지도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쓸쓸해보이고 약간은 못생겨보이는 그의 스냅사진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그런 맥스의 모습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 보인다며 맥스를 데려오자면서 필자를 일주일 동안 졸랐다. 할 수 없이 우리는 6개월이 다 된 맥스를 미네소타에서 데리고 왔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사이 남편은 완쾌되었고, 큰아들은 훌쩍 자라서 대학을 갔고, 우리는 많은 일을 함께 겪었다. 그렇게 가족이 되었지만, 개는 사람보다 수명이 짧은지라 헤어짐을 준비하는 슬픔은 항상 사람들의 몫인 것 같다.

   우리는 맥스의 생일 때에 맞춰 매년 정기검진을 꼬박꼬박 받아왔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맥스의 생일에 맞춰 지난 2월 정기검진을 받았다. 10살이 넘어 시니어 첵업까지 해야 한다고 해서 예년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검사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아주 건강하다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맥스의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비해 너무 많은 물을 마셨다. 어떨 때는 목이 타들어가는지 뒷마당에 나가서 눈속에 코를 박고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맥스의 이상행동에 정기검진을 받은 지 일주일만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 때도 의사는 맥스의 진료기록에 여전히 건강해 보인다 라고 기록했다. 그리고는 보호자가 불안하다면 신장 검사를 신청하겠다라는 의사의 짧은 소견을 듣고, 병원을 나왔다. 

   그러나 이튿날 맥스는 걷지도 못하고, 병원을 다녀온 지 3일째 곡기까지 끊어버렸다. 우리는 맥스를 데리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른 의사가 진료를 봤다. 이상하다며 한참동안 이전의 진료기록과 자신의 소견 사이에서 갈등을 하는 것 같았다. 결국 맥스는 파커에 있는 응급센터로 옮겨졌다. 우리는 응급실로 들어간 맥스를 반나절 만에 다시 볼 수 있었다. 손목과 배의 털이 깎여져 있었다. 손목은 이름 밴드 때문에, 배의 털은 초음파 검사 때문에 면도했다고 한다. 검사결과를 본 닥터는 아주 담담하게 안락사를 권했다. 2주전 정기검진 때만 해도 건강했던 아이가 안락사를 시켜야 하는 지경에까지 다다랐다는 현실을 마주하자, 초진에서 오진을 한 의사를 향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병명은 항문낭선암이었다. 수의사인 필자의 동생에 따르면, 검진시 기본적으로 개의 몸통과 엉덩이 부분을 쓰다듬으면서 만져보는데, 항문낭선암은 자세한 피검사를 하지 않고, 엉덩이 부분을 만져만 봐도 금세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병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듣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좀 더 빨리 알아차렸으면 수술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남편과 나는 감정을 추스르고 맥스의 상태에 집중하기로 했다. 응급센터 의사에게서 받은 소견서에는 안락사 권고내용과 함께 “Max may only have a few days(맥스는 며칠밖에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는 “a few days” 단어에 대한 집중 분석에 들어갔다. 고작 ‘며칠 정도’라는 뜻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옆집 미국 사람에게 다시한번 그 뜻을 물어보았다. 그는 2~3일 정도, 일주일은 넘기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슬픔에 잠겼다. 무엇을 먹이고, 무엇을 주지 말아야 하는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는 수술도 권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다며, 안락사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집에 가서 마지막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며, 죽으면 장례업체를 연결시켜줄 수 있으니 병원으로 연락하라고 했다. 의사는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는 상황이 미안했던지 스테로이드와 진통제 한통을 처방해 주었다. 이또한 일시적으로 작용할 뿐이어서 희망없는 맥스를 위해 고작 1주일치를 처방해주었다. 이렇게 맥스는 2~3일내에 죽는, 아주짧은 시한부를 선고받았다.

   의사들의 단언에 필자는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맥스의 전용 서랍에 가득 담겨있던 간식,  큰 맘먹고 구입했던 펫 후코이단과 관절영양제도 지인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다.  지난 수년간 매달 배달온 사료업체에도 더 이상 배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무엇보다 갑작스럽게 그와 이별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가족 모두는 슬프고 혼란스러웠다. 

  7월이 시작되었다. 7월의 첫날, 필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맥스와 산책을 나갔다. 예전과 똑같지는 않지만, 가끔 뛰기도 하고 발걸음도 제법 가벼워졌다. 하루 세 끼를 다 먹고도 간식에도 욕심을 보인다.  의사들이 일주일도 살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던 맥스는 아직도 살아있다. 응급실에서 고작 1주일치 받아왔던 약은 벌써 13번이나 리필을 했으며, 사료 배달도 재개시켰다. 물론 맥스가 좋아하는 간식들도 다시 주문했다. 우리 가족은 맥스와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인지 많이 담담해졌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행복한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필자는 살면서 두 번의 시한부 선고를 들었다. 한번은 6개월을 선고받았던 남편, 그리고 3일을 선고받았던 맥스. 10년전 시한부를 선고받았던 남편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수술 후에도 그는 행복하게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어느 때보다 가장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다. 의사들이 이구동성으로 길어야 일주일 정도 버틸 수 있다던 맥스는 3개월이 지난 오늘도 씩씩하게 걸어 다니고 있다. 가족들이 집에 오면 제일먼저 나와 마중을 하고, 과자를 달라면서 조르기도 하고, 잠들기 전까지 우리 옆에 붙어 앉아 가족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생명뿐 아니라 가족관계, 대인관계, 비즈니스 등 여러 분야에서 시한부 혹은 마지막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가 있다. 하지만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또 다른 모습의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오늘 하루도 모두 화이팅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