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죽은 후 무엇을 남기겠습니까?
이하린 기자
며칠 전, 집으로 가는 길에 ‘Estes Sale’이라고 적힌 종이가 길거리에 붙어있는 것을 봤다. 이것은 거라지 세일과 비슷하지만, 살림살이의 대부분을 모두 파는 것에 차이가 있다. 보통 집주인이 사망을 했거나 이혼 등으로 가재도구를 모두 팔아치우기를 원할 때 에스테스 세일을 하는데, 에스테스 세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차를 돌려 에스테스 세일하는 집을 찾아갔다. 거라지의 작은 못조각 하나부터 시작해서 숟가락, 포크, 옷가지, 가구 등 모든 것에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거라지에서 만난 남자는 이 집의 주인이었던 할머니가 지난 1월에 돌아가셔서 모든 것을 파는 것이라고 했다. 거라지를 지나 뒷마당으로 가자 아담한 뒷마당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할머니가 평소 쓰시던 물건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들 같았다.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조금의 동정도, 조금의 연민이나 존중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할머니가 평소에 입었던 옷가지들이 걸려있는 옷걸이를 휙휙 빠른 속도로 돌려가며 입을 만한 옷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은 탐욕스러워 보였다. 할머니의 손때가 묻어있는 가재도구들, 냄비며 오래된 낡은 주방용품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널부러져 있었고, 그 사이를 뒤적거리는 사람들은 흡사 영화에서 본 전쟁통에서 죽은 사람들의 옷가지를 뒤적거리는 배고프고 악만 남은 사람들을 연상시켰다.
미네소타에 산다는 할머니의 딸은 중년을 훌쩍 넘긴 초로의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어머니가 남기고 간 물건들을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했다. 옷가지 하나하나를 들춰볼 때마다 그 옷을 입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괴롭고 슬프다고 했다. 딸은 어머니의 기억을 하나하나 팔아치우고 있었다. 물건들이 하나 둘씩 팔려나갈 때마다 딸은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그 추억들의 한조각들과 작별을 하고 있었다.
과연 내가 죽고 나면 내 물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내 아이들에게 별 의미가 없는 끄적인 노트와 편지 뭉치들, 내가 평소 아껴왔지만 아이들은 못 읽는 한국책들, 내가 입던 옷들, 내게는 추억이 가득한 자잘한 물건들, 물건들, 물건들…. 그 물건들은 내가 죽고 나면 내 아이들에게는 처리하기 골치아픈 쓰레기가 되어 버릴 것이다.
지난 1993년 11월에 입적하신 성철스님은 40년동안 입어 누더기가 된 염의 한벌과 검은 고무신 한켤레, 돋보기 안경 하나만을 유품으로 남겼다. 2009년 2월에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 역시 낡아빠진 의복과 신발, 그리고 안경 정도만을 유품으로 남기고 천국으로 가셨다. 무소유의 삶.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삶. 이사를 앞두고 짐을 정리하면서, 10년만에 살림살이가 얼마나 불어났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쉽게 버릴 수도 없는 서류 뭉치만 몇박스나 된다. 그렇게 버리고 또 버렸는데도 도대체 짐싸는 작업은 끝이 없다. 애들 장난감도 끝도 없이 나온다. 요건 아직 버리기가 아까우니까… 이건 기념으로 일단 가지고 있어야지… 이건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버릴 수는 없어….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죽으면 싸들고 가지도 못할 짐들을 싸고 또 싼다. 무소유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하다. 인간이 그렁그렁 끌어모으며 사는 짐의 무게는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겁다. 돌아가신 할머니네 집 뒷마당에서 말없이 서있던 아름드리 나무가 생각난다. 어쩌면 할머니는 그 나무 옆에서 묵묵히 자신의 물건들이 하나하나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모든 물건들을 떠나보내고 나면 할머니도 무거웠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훌훌 떠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