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 이야기 1] 하나의 문이 닫히고
나뭇잎 사이로 : 이성한 우리교회 담임목사
‘나뭇잎 사이로’는 이성한 목사가 성도님들과 마음과 꿈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하나님께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을 때(창3:8), 나뭇잎 사이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은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와 사랑으로 그들을 인도합니다 (창3:15).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예수 없이 고통하며 살아가는 이때에, 나뭇잎 사이로 들려오는 주님의 인자한 음성을 듣기를 소망하며 글을 다시 시작합니다.
우리교회는 2014년 9월 21일 Brighton의 태권도장에서 처음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로라에 있던 휄로쉽 교회 성도님들, 그리고 청년부 목사였던 제가 덴버 북쪽, 교회가 많지 않은 지역에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자 함께 기도하며 모두 10명의 성인성도가 파송 받아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성도님들은‘개척교회’에 대해 매우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척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저희를 파송한 교회는 성도들이 헌금할 능력이 있다며 개척지원금을 중단해 버렸고, 교회개척에 대한 훈련이 없었던 저는 하지 않아도 되는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민사회에서 교단의 적극적인 보살핌과 후원 없이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 끊임없는 재정적인 도전에 맞서, 주님의 교회가 계속되게 하기 위해 병원에서 청소일을 했었고 지난해 2월부터는 공항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9년이나 지나갔고, 가정교회로 자그마하게, 예수 믿지 않는 분들, 교회에 다니는 것을 멈춘 분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2023년 11월 26일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모든 것이 멈추었습니다. 9월 말부터 시작된 10월 한 달간에 몰아친 이별들은 저를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한국에 계신 이모부께서 돌아가시고, 교회의 어려울 때 마다 저를 안아주던 성도님이 North Carolina에 이사 가신 후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참석하였습니다. 10년을 넘게 저의 곁을 지켜 주던 강아지 왕자가 갑자기 병으로 이틀 만에 죽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006년 시카고의 교회부터 신앙생활을 같이 하고 교회를 같이 개척하여 목자로 섬겨 주시던 이 장로님과 권사님께서 한국으로 10월 말에 이사하셨습니다. 그분들은 저희 두 자녀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역할을 하셨고, 저의 동역자요 부모님 같은 분들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들마저 떠나고 나니, 저의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던 것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상실을 사람들은 번 아웃이라고도 하고 우울증이라고도 하지요.
11월 말에 마지막 예배를 드리면서 성도님들께, 3개월간의 안식월을 갖겠으니, 각자 다른 교회에서 예배드리시다가 그곳이 맞으면 등록하여 출석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3개월 후에 다시 만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마음이 비어 있는 상황에서 성도님들을 마냥 붙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사실 3개월 후에 이 마음이 회복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의 갑작스런 결정에 어떤 분들은 화가 나셨고, 어떤 분들은 실망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의 안개 같은 안식월은 시작되었고, 지난 9년간 한 번도 쉬임 없이 이어져 오던 예배도 멈추었습니다. 12월의 차가운 바람과 공기는 더욱 차갑게 아팠지만, 웃고 있지만 속으로 울고 있는 설교자의 설교를 멈출 수 있는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살아내야 하는 우리네 이웃들이 많이 그러한 것처럼, 저 역시 아버님의 예순, 칠순, 팔순 생일 어느 하나 챙겨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는 꼭 생일을 함께 해야겠다 싶어 12월이 되자마자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반가움도 잠시, 아들을 너무나 잘 아는 어머님은 아들의 마음을 읽어 버리시고 말았고, 개척교회를 섬기는 아들이 더 안쓰러우신가 봅니다. 며칠 후에는 고창의 은퇴자 마을에 정착하신 그리운 이 장로님과 권사님을 방문해 식당 밥도 먹어 보고, 출석하시려는 교회에 들어가서 부목사님과 인사도 했습니다. 함께 동네 맛집에서 식사한 후 카페에서 상당한 수준의 커피 맛을 본 후에야 안심이 들었습니다. 개척교회를 섬기며 그동안 겪은 고초와 아픔, 애달픔, 이제 내려놓고, 여생을 조금은 편안하게 보내기에 좋은 환경에 있으신 것 같아, 하나님의 새로운 인도하심이 감사했습니다. 교회를 함께 섬길 때, 더 섬겨 드리지 못하고 넘치는 사랑을 받은 것에 대해 미안함이라는 단어로는 충분치 못한 복잡한 감정이 감사의 뒤편에 부끄럽게 숨어 있습니다.
그렇게 한국 방문의 시간이 저물어 가고 있을 때 어느 날 미국으로부터 낯선 전화가 울려왔고, 음성 메시지가 텍스트로 변환되어 남겨집니다. “I'm looking for volunteers who might be willing to come and sit with this individual and speak with her. I think it could just really improve her quality of life if she was spoken to in her own langu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