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경외함이 거룩의 최고봉입니다!”
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인터넷에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한 간호사 분이 올린 글인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대로 옮겨 드립니다. 내가 결혼전 간호사로 일할 때의 일이다. 아침에 출근해 보니 아직 진료가 시작되기에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25살 남짓 되보이는 젊은 아가씨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주머니가 두 손을 꼭 마주잡고 병원문 앞에 서 있었다. 아마도 모녀인 듯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아주머니. 아직 진료 시작되려면 좀 있어야 하는데요. 선생님도 아직 안 오셨구요.” 내 말에 두 모녀가 기다리겠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마주 보았다. 업무 시작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두 모녀는 맞잡은 손을 놓지 않은채 작은 소리로 얘기를 주고 받기도 했고, 엄마가 딸의 손을 쓰다듬으면서 긴장된, 그러나 따뜻한 미소를 보내며 위로하고 있었다.
잠시 후 원장선생님이 오시고.. 나는 두 모녀를 진료실로 안내했다. 진료실로 들어온 아주머니는 원장님께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얘..얘가...제 딸아이예요...예..옛날에..그니까..초등학교 들어 가기전에.. 외가에 놀러갔다가 농기구에 다쳐서 왼손 손가락을 모두 잘렸어요.. 다행이 네 손가락은 접합수술에 성공했지만...근데....네... 네번째 손가락만은 그러질 못했네요.. 다음 달에 우리 딸이 시집을 가게 됐어요.. 사위될 녀석... 그래도 괜찮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디 그런가요.. 이 못난 에미..... 보잘것 없고 어린 마음에 상처 많이 줬지만.. 그래도 결혼반지 끼울 손가락 주고 싶은게.. 이 못난 에미 바램이예요.. 그래서 말인데....늙고 못생긴 손이지만 제 손가락으로 접합수술이 가능한지..... " 그 순간 딸도 나도 그리고 원장선생님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원장님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한채.. "그럼요.. 가능합니다. 예쁘게 수술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두 모녀와 나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습니다. 일찍이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그 소중한 몸의 일부라도 떼어 주겠다는 마음에서 엄마의 사랑을 읽습니다. 목숨까지 내어 주면서 살리겠다는 표현을 하신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사랑을 읽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부모를 경외하라는 말씀과 하나님께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같은 의미로 쓰여진 말씀입니다. 십계명 5계명은 신과 인간 모두에게 연결되는 독특한 표현의 말씀인 것입니다. 경외한다는 것, 예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해 지는 걸까요? 위에서 한 간호사가 이야기 한 그런 사랑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에서 경외함, 예배함은 시작되는 거 아닐까요? 지난 주간 레위기를 읽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레 21:2,3 말씀에서 시체를 부정한 것이라 하시면서 만지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족의 시체는 예외로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봅니다. 아무리 부정한 것도 가족은 예외가 된다는 것이 제겐 새롭게 다가오는 진리였습니다. 흔히 부부상담을 하면서 가정을 법정으로 만들지 말라는 조언을 하는데, 가정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법정이 아니라, 시체까지도 부정한 것이 되지 않아야 하는 따스한 쉼터,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모의 넓은 사랑의 마음으로 자녀들에게 저절로 부모를 공경하고 경외하도록 가정을 사랑의 동산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로 하여금 거룩의 최고봉인 부모 경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