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없어 떠나는 유학생들

2024-05-03     김현주 편집국장

    K-취업비자는 전문 교육을 받고, 전문기술을 보유한 한국 국적자에 미국 정부가 연간 최대 1만5천개의 전문직 취업비자(H-1B)를 발급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으로, 지난해 4월 미국 상·하원에 발의된 상태다. H-1B 비자는 연 8만여개로 제한돼 각국 전문직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 법이 통과되면, 한국은 H-1B 비자 한도와 무관하게 연간 최대 1만5천개의 전문직 비자 쿼터를 확보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H1-B 비자 쿼터를 따로 확보한 나라는 칠레(1천400장), 싱가포르(5천400장), 호주(1만500장) 등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도 전문직 취업비자를 신청한 적이 있었다. 20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 이지만 그때만 해도 쿼터를 따로 확보한다든지, 추첨과 같은 제도가 없었다. 필자는 학생비자를 받아서 미국을 왔는데, 첫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학생비자를 유지하는 것이 벅찼다. 일단 학비가 많이 들었고, 생계 유지를 위해 일을 할 수 있는 곳도 쉽게 찾지 못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체류신분을 바꾸기 위해 신문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다행히 전문직 취업비자를 받고, 영주권도, 시민권도 받았다. 이렇게 체류신분을 해결하기 위해 10여년이 걸린 것 같다. 이 전문직 취업비자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영주권, 시민권까지 획득할 수 있는, 즉 ‘이민’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허용해주는 비자이다. 나때만해도 전공관련 석사학위 이상과 스폰서 업체만 확실하면 영주권을 받는데까지는 별탈없이 진행되었다. 그때가 911이 발생한 직후였는데도, 요즘같이 이렇게 까다롭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 비자이름 앞에 붙혀진 ‘전문직’이라는 단어는 이 비자의 실제 수혜자들의 직급이나 역할에 비해 조금은 과장표현된 경향이 있었고,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문직 취업비자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이루어졌다. 실제적인 ‘전문직’ 종사자들로 엄격히 심사가 진행되었고, 최소 연봉 규정 등이 매우 까다로워졌을 뿐 아니라, 국가별 쿼터제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는 인도와 중국으로부터 유령회사를 통한 허위 스폰서 진행이 매우 많이 적발되면서 비자의 남용과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의도로 해석되었다. 나아가 미국 청년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주겠다는 취지도 담겨있다고 보면 된다.

    전문직 취업비자의 경우는 특이하게 비자 지원자를 모집하는 기간이 연중 1회로 정해져 있다. 보통 4월 첫주에 모집을 시작하며 접수 쿼터가 차면 모집을 마감한다. 마감을 하더라도 추첨을 통해 선발하다보니 실력과는 상관없이 운에 따라 결정되는 프로세스이다. 불공정한 과정임은 확실하다. 한인 유학생들은 비싼 돈을 들여 학교를 다니고 졸업했지만,1년에 한 번 밖에 추첨 기회가 없어서 매일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속에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지난달 비자 신청 마감이 끝나면서 바늘구멍 뚫기와 다름없는 추첨 확률 속에서 유능한 한인 유학생들이 비자 때문에 취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졸업해도 취업비자가 없어서 회사인터뷰 기회도 잡기 어려워졌다. 이와 관련된 여러 사례들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다. 파슨스 디자인스쿨 졸업 후 뉴욕의 헬스케어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로 근무 중인 한인 김씨는 STEM 전공으로 3년 동안 3번의 전문직 취업비자(H-1B) 추첨 기회가 주어졌지만, 2년 연속 탈락했다. 마지막 추첨에서도 탈락할 경우를 대비해 예술인 비자를 알아보고 있다고한다. 이것또한 안되면 귀국해야 한다. UT 오스틴 대학원에서 회계학 전공 후 맨해튼에서 회계사로 근무 중인 또다른 한인 정씨는 어렵게 H-1B 스폰서 회계법인에 입사했지만, 최근 추첨에서 떨어져 할 수 없이 올해 안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심화되는 H-1B 추첨 경쟁률로 대학 졸업 후 어쩔 수 없이 귀국길에 오르는 한인 유학생들이 늘어나며, 많은 이들이 E-4비자를 향한 절실함을 피력하고있다.

    전문 교육을 받고 기술을 보유한 한국 국적자에 연간 최대 1만5000개 전문직 취업비자를 발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E-4 비자 신설법안’은 2013년부터 매 회기 발의됐으나 미 의회의 문턱을 넘기지 못했다. 캐나다·칠레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들은 이미 누리는 혜택이지만, 한국 정부는 FTA 체결 당시 E-4 비자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다.

    상황이 안타까워지자 뉴욕 일원 한인사회에서부터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인 E-4 비자 신설 법안을 통과시키자는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미주한인상공회의소 총연합회·뉴욕한인회 등은 최근 뜻을 모으고 전자청원 플랫폼(Change.org)을 통해 E-4 비자 신설 법안 통과 촉구 서명 페이지(change.org/PartnerWithKoreaAct)를 개설했다. 이 서명운동은 연방의회에 E-4비자 신설 등을 담은 ‘한국과의 동반자 법안’(Partner with Korea Act) 통과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전문 교육을 받고 관련 기술을 보유한 한국 국적자에 연간 최대 1만5000개의 전문직 취업비자를 발급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미국대학교에서 비싼 돈을 들여서 공부를 했지만 제대로 실무경험을 갖지 못한 유학생들이 많다. 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한국으로 돌아가 배웠던 모든 것들을 펼칠 수 있도록 한인사회 전체가, 나아가 한국 정부도 발벗고 나서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