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못할 영어교육 프로그램] 지나가는 소도 웃을 말도 안되는 영어를 못하는 이유

이철범 BTMschool.com 대표

2024-04-05     weeklyfocus

    한국인은 혀가 짧아서 영어를 못한다, 그래서 혀 수술을 해야 한다라는 식의 얼토당토 않는 주장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신문지상에 대대적으로 소개되었다고 해도 한국인에게는 영어에 대한 ‘읽기 뇌’만 있고 ‘듣기 뇌’가 없기 때문에 영어가 안 된다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학설에 종긋 귀를 세우지도 말아야 한다. 일부 학자들이 ‘듣기 뇌’ = ‘영어를 잘한다’라는 전제의 모순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들을 수 있으면 말할 수 있다’ 또는 ‘들을 수 없으면 말할 수 없다’라는 착각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면서 줄줄이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과, 영어를 줄줄이 알아듣기는 하지만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을 똑같은 영어실력자로 규명하는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어교육방법은 처음부터 잘못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상에 대한 잘못된 이해 즉 착각을 전제로 진행하는 연구의 결과로 개발된 영어교육방법의 문제점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기껏 돈과 시간을 들여서 ‘듣기 뇌’를 만들어봤자 영어습득에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우치지 못하고 여전히 그 문제에 집착하는 것이 안타까울뿐이다. ‘읽기 뇌’와 ‘듣기 뇌’를 구분하면서 ‘말하기 뇌’를 별도로 생각치 못하는 편협함이 안타깝다. 혀가 짧아서 또는 듣기 뇌가 없어서 한국인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영어권 국가에서 조기유학을 하거나 자라나는 어린 한국인들이 미국인들과 똑같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지 묻고 싶다.

    한국인에게 ‘듣기 뇌’가 형성되도록 아무리 듣기 중심의 영어교육을 한다고 해도 영어는 될 수가 없다는 것은 몇 년씩 토토(토익, 토플) 듣기에 매달려 영어를 줄줄이 알아듣는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들의 현실로도 얼마든지 이미 오랫동안 증명되어 온 것이다. 또한, 영어를 습득하겠다는 일념으로 미국에 와서 주류 소매업을 하며 7년 넘게 하루 10여시간씩 TV를 열심히 보고 듣기만 했던 한 야망의 한국인이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영어는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인정한 일화로도 증명되는 것이다.  한 때 일부 정치인들이 뒤질세라 앞다투어 학생들이 영어를 경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시끄럽게 자랑했던 ‘영어 마을’도 이제는 시들어졌다. 이것은 마치 평소에 피아노를 연주해본 적이 없는 학생들에게 ‘피아노 마을’을 만들어 주고 오가며 한번씩 피아노를 쳐보라는 것과 같다. 그만큼 식견이 짧은 조치인 것이다.또한 원어민 선생님을 학교에 배치하여 1주일에 몇 시간씩 원어민 선생님과 영어수업을 하게 하는 것도 역시 짧은 소견일 뿐 무의미 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평소에는 종이 위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놓고 피아노 연습을 시키다가 1주일에 몇 번씩 학생들에게 피아노 구경을 시켜주고 건반을 만져보게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학습자들에게 효율적인 영어습득으로 권하는 아이디어가 고작 자신도 해보지 않은 (해보았다면 그 결과의 부작용을 잘 알기에 권하지 않을 것이다) 어학연수나 조기유학, 원어민 영어 선생님 등과 같이 한국적 상황에서 해결할 수 없는 방법을 권하는 학자들과 선생님들을 어떻게 믿고 한국에서 영어공부를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도 결과를 모르면서 ‘무조건 영어 TV를 많이 보라’고 권하거나 수 백권의 책을 읽으라거나, 수 백편의 영화를 보라고 권하는 선생님이나 학자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이와 같이 한국의 영어교육 정책 입안자들이나, 영어 선생님, 대학의 TESL 전공 학자들 등 모두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처음 제기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정평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학부형들이 오래전부터 자녀들을 해외로 내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이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이다. 한국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영어는 더이상 예전과 같은 문자 위주의 영어만이 아니다. 문자영어는 기본이고 능숙한 영어회화능력이다. 그와 같은 영어회화능력을 습득하고자 해외로 자녀를 보내고, 이민을 가는 것은 결과의 보장도 없이 때로는 되돌이킬 수 없는 상당한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한국 내에서 능숙한 영어를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을 찾는 것은 학습자의 책임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하는’ 이치인 것이다. 선생님의 책임이라고, TESL 학자들의 책임이라고, 영어교육 정책 담당자의 책임이라고 마냥 미루고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도 모르기 때문에 답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