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누가복음 24장 15절~27절
구봉서 장로님은 믿음이 참 좋은 분이셨지요. 코메디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물했지요. 연애인 교회를 시작해서 연애인들을 전도하는 일에도 힘을 쓰셨던 분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연애인들이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는 데, 그날 처음 거기에 끌려 온 연애인이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그날, 목사님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성경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처음 성경공부에 끌려 온 연애인이 믿어지겠어요? 안 그래도 억지로 툴툴 거리며 끌려와서 속상한데, 손을 들었지요.
“목사님, 그 말도 안되는 소리, 그걸 어떻게 믿어요? 증거가 있나요?”
그러니까 분위기가 썰렁해져 버렸어요. 야단났지요. 그때 구봉서 장로님이 뒤돌아보면서 이랬다고 해요.
“야, 네가 뭔데 못 믿냐? 마리아 남편, 요셉도 믿었어. 네가 뭔데?”
또 한 번은 부활절을 앞두고 성경을 공부하면서, 목사님이 질문했다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맨 처음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었나요? 미리 성경을 읽어 오라고 했지만 그러질 못했어요. 또 분위기가 썰렁해지니까 구봉서 장로님이 일어서서 부활하신 예수님 흉내를 내면서 이랬다고 해요.
“예수님이 맨 처음 뭐라고 했냐하면, 얘들아, 나 보이지? 나야 나, 깍꿍.”
그래서 한바탕 웃었다는 얘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지요.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제자들을 찾아 다니시면서 그들의 의심을 믿음으로 바꾸는 일에 힘을 다하셨습니다. 부활신앙을 심어 주신 거지요. 오늘 본문은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를 만나 주신 주님의 말씀에 관한 내용입니다. 두 제자가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있지요. 첫째는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자기 생각, 자기 판단에 믿음의 눈이 가리워져서 부활하신 주님이 곁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집요하게 붙들고 있는 것은 메시야가 자기 나라 이스라엘을 다윗 왕 때와 같은 영광으로 회복시키실 때가 지금 인지에 관한 일이었지요. 주님은 온 인류의 죄를 감당하시기 위해 오셨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 집착한 협소한 생각에 믿음의 눈이 가리워져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거지요. 우리의 눈을 가리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음의 눈이 가리워진 사환을 위하여 엘리사가 기도하지요.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그리고 사환이 믿음의 눈을 여는 순간, 아람 군대보다 더 막강한 여호와의 군대를 보게 되지요.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우리 평생의 기도 제목일 것입니다.
둘째, 더디 믿은 이유는 두 제자가 대단히 소극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거지요. 어떤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하지요. 다른 제자들도 그 소식을 듣고 무덤에 갔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럼, 나도 가 봤어야지요. 그럼 나도 무덤에 가서 빈무덤인지 확인하는 열심히 필요했는데, 두 사람은 그러질 못했습니다. 누가 은혜 받았다고 하면 나도 한 번 해 봐야지요. 그러질 못해서 더디 믿는 자들이여 라는 책망을 듣게 되지요. 그런데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라는 책망의 말씀을 묵상해 보면 여기에 사랑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책망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마음에 더디 믿는 이들이여라는 책망의 말씀 속에는 반드시 두 제자의 믿음의 눈을 열어 주셔서 회복시키시고 온전한 믿음으로 고쳐 주시겠다는 주님의 사랑이 담긴 말씀이지요, 중요한 것은 부족하더라도 두 제자가 주님과 가까이 동행했다는 사실입니다. 눈이 가리워졌더라도 주님께 가까이 가기만 하면 주님이 가리워진 눈을 열어 주셔서 깨닫게 하시고 온전한 믿음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배짱인 셈이지요. 오늘도 부활신앙과 재림신앙으로 무장한 삶을 살아내는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 왜 그래?
종종 아내로부터 아이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전혀 몰랐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역시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지요. 엄마와 아이들이 밀착해서 벌어졌던 이야기들이니까요. 언젠가 어느 토요일 아침에도 식사를 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아이들 어렸을 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저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를 아내는 기가막히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둘 째 딸 아이가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 때일 겁니다. 둘째라서 그런지 명랑하고 활달하기는 한데, 덤벙거리기도 하던 시절입니다. 뭔가 잘못하니까 지 엄마가 매를 댔어요. 몇대 따끔하게 매를 댔습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울면서, 서럽게 울면서 엄마에게, 이렇게 따지는 겁니다. 엄마를 가르키면서 말입니다.
“엄마,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지?”
“그래, 학교 선생님이다.”
“그러면 학생들 가르치는 사람 맞지.?”
“그래, 학생들 가르치는 사람이지, 그런데 왜 그런 걸 물어?”
아직도 화가 덜 풀린 아내가 소리를 질렀답니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둘 째, 초등학교 3학년 짜리 입에서 이런 훈계 아닌 훈계가 흘러 나왔습니다.
“엄마, 그러면 학교 선생님이란 사람이, 자식이 잘못하면 살살 가르쳐서 고치게 해야지, 살살 가르쳐서 깨닫게 해야지, 이렇게 아프게 때려서 울게 해서 고치게 하느냐고. 선생님이 그러면 되느냐고. 학교 선생님이 그러면 되느냐고.”
그러면서 또 서럽게 울어 대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요즘은 그럽니다.
“엄마, 내가 엄마한테 매를 맞아서 그래도 이만큼 잘 컸지,”
아내는 그저 덤덤히 듣고 있지만 속으로는 괜히 흐뭇했을 것입니다.
▷ 거기 너 있었는가?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나무 위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해가 그 밝은 빛을 잃을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무덤 속에 뉘일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무덤에서 나올 때
오 그 일로 주께 영광 영광 영광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