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낳은 최고의 명의일 뿐만 아니라 <동의보감>의 저자인 허준을 다룬 MBC 일일드라마 <구암 허준>에서, 허준은 오늘날의 경남 산청에 해당하는 산음현에서 스승 유의태의 가르침을 받으며 물 긷기, 약초 캐기, 약재 관리를 하다가 최근에는 독자적인 환자 치료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유의태란 존재는 허준에게 단순히 의술뿐만 아니라 인생철학까지 가르쳐준 스승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의 유의태는 허준에게 엄청난 의미를 갖는 존재다.
그런데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이라는 이야기는 드라마나 소설 속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으로 둔갑하게 된 것은 1965년에 나온 한의학자 노정우의 <인물한국사>에 실린 허준에 관한 글 때문이다. 이 글에서, 노정우는 다음과 같은 논리적 단계에 근거하여 '허준의 스승은 유의태'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1) 허준의 할아버지는 경상도에서 관직을 지냈고, 할머니는 경상도 진주 출신의 유(柳)씨다.
(2) 따라서 허준은 진주와 같은 지역인 경상도 산청에서 성장했을 것이다.
(3) 그런데 산청에는 유의태라는 명의가 있었다.
(4) 그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이었을 것이다.

   노정우는 경상도에서 직접 수집한 설화를 근거로 이런 결론을 도출했다. 오늘날의 드라마나 소설에서 유의태를 허준의 스승으로 설정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드라마 <구암 허준>에서 허준이 산청에서 의학을 배웠다고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주장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점은 누구라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어머니나 아버지의 연고지가 아닌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연고지에서 허준이 성장했을 것이라는 부분부터가 매끄럽지 않다.
역사학자 김호가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허준의 어머니는 전라도 담양과 연고가 있었고 아버지는 경기도 양천(현재의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이나 파주와 연고가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허준을 경상도 산청과 연관시킨 것은, 산청의 유의태와 허준을 연관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노정우의 주장에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유의태란 인물이 어느 시대 사람인가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의태를 허준으로 스승으로 단정했다는 점이다. 
유의태(柳義泰)와 이름이 비슷한 유이태(柳以泰)란 명의가 경상도 산청에서 활동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유이태가 허준과 다른 시대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숙종 39년 12월 16일자(1714년 1월 31일) <숙종실록>에는 '경상도 의원 유이태가 조정의 부름에 빨리 응하지 않으므로 처벌해야 한다'는 사헌부(검찰청)의 탄핵이 소개되어 있다. 숙종의 질병이 심해진 음력 12월 6일로부터 열흘 뒤에 이런 일이 있은 걸로 보아, 조정에서 유이태를 부른 것은 숙종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것은 유이태가 숙종시대에 전국적 명성을 가진 명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호가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에서 인용한 거창 유씨의 족보에 따르면, 유이태는 숙종 때인 을미년 2월 27일(1715년 4월 1일)에 사망했고 그의 무덤은 경상도 산청에 조성됐다. 이 정도면, 족보 속의 유이태가 <숙종실록>의 유이태와 동일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경상도 산청에 유이태란 명의가 있었던 점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만약 노정우의 글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허준에 관한 소설과 드라마가 지금과는 판이한 양상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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