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연못에 빠져 죽은 아내의 사망 원인을 조사하다가 괴한들에게 쫓겨 절벽 밑으로 떨어진 조선 왕세자 이각(박유천 분). 이각이 측근 3인방과 함께 대한민국 서울의 옥탑방에 떨어진 뒤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 SBS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 이들과 최초로 조우한 옥탑방 주인 박하(한지민 분)는 “궁으로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들을 트럭에 태워 창덕궁에 실어다 주었다. 하지만, 입장권을 끊지 않고 뛰어 들어가는 바람에 이들은 도로 쫓겨나고 말았다.

 도저히 궁궐에 들어갈 길이 없어서 옥탑방으로 돌아와 이것저것 심부름을 해주며 하루하루를 당혹감 속에 연명하고 있는 이각과 3인방. 다행히 이들에게 당혹스럽지 않은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음식문화다.
물론 배고파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들은 21세기 음식에 신속히 적응했다. 케첩 찍찍 뿌린 오므라이스도 뚝딱, 젓가락 비비고 뚜껑 접어 먹는 컵라면도 뚝딱이다. 무사가 활 쏘는 장면에 놀라 텔레비전을 부술 정도로 21세기 문명을 낯설어하면서도, 유독 음식문화에 대해서만큼은 꽤나 신속히 ‘연착륙’했다.

 임진왜란(1592~1599년) 때 경복궁이 불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서 드러나듯이, 왕세자 일행은 조선시대 후기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대화 내용을 볼 때, 이들은 17세기나 18세기 사람들이다. 만약 이들이 16세기 이전에 태어났다면, 21세기 음식에 좀 더디게 적응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태어나기 이전인 16세기에 세계 음식문화에 혁명적 변화가 발생했고, 그때 새로 생긴 음식문화의 기조가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식탁 위에 올라오는 옥수수, 감, 고구마, 고추, 토마토, 땅콩, 파인애플은 우리에게 꽤나 친숙한 식품들이다. 옥수수나 감자는 일부 국가나 지역에서 주식의 지위를 점하고 있고, 고추는 주요 양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식품들은 16세기 이전만 해도 아프로유라시아(소위 구대륙)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아메리카에서만 재배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서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진출을 계기로 지구의 나머지 지역으로도 전파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지구 전역의 음식문화가 하나로 통합되었으니, 16세기는 음식문화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유럽에 들어온 감자는 네덜란드를 통해 일본과 동아시아에 전달되었다. 또 대서양 횡단노선을 통해 북아메리카로도 전해졌다. 남아메리카 감자가 북아메리카로 곧장 전해지지 않고, 유럽을 거친 뒤에야 북아메리카에 전해진 것이다. 고구마가 동아시아 식량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면, 감자는 유럽 식량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 아메리카의 고구마, 감자가 아프로유라시아의 밥상을 신속히 장악한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16세기 서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진출을 계기로 두 대륙의 음식문화는 신속히 통합되어 나갔다.

  16세기 이후의 이 같은 교류가 없었다면, 조선 후기 사람들은 옥수수, 감자, 고구마, 고추를 구경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럴 경우, 그들은 오늘날의 우리와 현저히 이질적인 식성을 가졌을 게 분명하다.  만약 그랬다면, 조선 후기의 김치 맛은 현재의 김치 맛과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고춧가루 없이 파, 소금, 마늘만으로 김치를 담가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는 오래 전부터 동아시아에서 재배됐고, 마늘 역시 단군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재배됐다.

  옥탑방 왕세자 일행은 그런 변화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대 음식문화의 출발점인 16세기 이후에 출생했으므로, 그 이전 사람들과 비교하면 21세기 음식에 훨씬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옥탑방 왕세자는 자신이 16세기 이전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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