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인 1123년, 송나라(북송) 사절단이 고려를 방문했다. 여덟 척의 배와 200명 이상의 인원이 동원된 대규모 사절단이었다.  이때 사절단 중간 간부인 서긍이란 인물이 고려의 제도 및 실정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황제에게 제출했다. <선화봉사고려도경>이라는 이름의 이 보고서에서 서긍은 고려에 관해 참 많은 것들을 다루었다. 그중 하나가 고려의 '특이한' 의료문화였다. <고려도경> 권17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고려는 본래 귀신을 숭상하여 음양에 얽매입니다. (그래서) 병이 나도 약을 먹지 않습니다. 부모자식이나 근친일지라도 눈으로 보지 않고, 오로지 주술을 걸어 (질병을) 억누를 뿐입니다." 고려란 나라에서는 책으로 의술을 배운 직업적 의료인이 아니라, 영적 능력을 보유한 무속인들이 주술을 걸어 질병을 치료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자의 몸에 손을 대고 주문을 외워 병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조선시대 의료 분야에서 무속인들의 역할 지대해

서긍이 목격한 의료문화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했다. 주술로 병을 치료하는 문화는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저 민간 차원에서 유행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적극 권장했던 것이다.

  세종 11년 4월 18일자(1429년 5월 20일) <세종실록>에는 '조선은 유교의 나라'라는 믿음을 굳게 갖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나온다. 말단 행정단위인 리(里)별로 무속인들을 배치하여 주민들의 의료를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사극에서는 환자를 등에 업고 의원을 찾아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지만, 실상은 무속인을 찾아가는 예가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무속인들은 '국민 주치의'였다고 할 수 있다.    조정에서는 리별로 무속인들을 배치한 뒤, 열병 같은 전염병이 돌면 지방 수령의 지휘 하에 의원과 무속인이 공동으로 환자를 치료하도록 했다. 환자 치료에 공을 세운 무속인에게는 종교세인 무세(巫稅)나 부역을 감면해주었다.
 평상시에는 무속인이 국민건강을 책임지고 비상시에는 의원과 무속인이 공동으로 책임진 사실. 이로부터 우리는 당시의 의료환경 중 하나를 엿볼 수 있다. 질병 치료능력을 가진 무속인의 숫자가 의학을 배운 지식인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직업적인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유교주의를 표방한 조선왕조로서도 무속인들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배층인 사대부 관료들도 무속과 불교에 대해 '전투 모드'를 취하긴 했지만, 막상 급하고 절실할 때는 이처럼 손을 내밀곤 했다. 그랬기 때문에, 유교주의 속에서도 무속이 여전히 국가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허연우(한가인 분)는 궁에서 쫓겨나 활인서에서 일종의 '사회봉사'를 했다. 연우는 그곳에서 환자도 돌보고 아이들과도 놀아줬다. 일종의 간호조무사 역할을 한 것이다.  연우가 근무한 서민의료기관인 활인서. 이 기관은 특히 무녀들과 깊은 관련을 가졌다. 활인서의 재정이 무녀들의 재정적 참여로 충당되었던 것이다.

  정조의 아들인 순조 임금 때 편찬된 재정?국방 백서인 <만기요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수납된 무세(巫稅) 중에서 한성 무세만큼은 활인서의 재정 경비로 충당되었다. 서울 무녀들이 활인서의 재정을 책임졌던 것이다. 무녀들이 한편으로는 여의사로 활동하고 한편으로는 재정 지원자로 활동했으니, 조선시대 의료 분야에서 무속인들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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