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이 심했다.

 조선시대 사회상을 묘사하고 있는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지난주 방영분에서 허연우(한가인 분)와 이훤(이수현 분)의 데이트 장면이 나왔다. 궁을 나선 연우와 잠행에 나선 이훤이 시장에서 우연히 만나 데이트까지 하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동선이 일일이 기록됐기 때문에, 왕이 임의로 궐을 벗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훤 임금은 워낙 '날렵'한지라,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잠행에 나섰나 보다. 게다가 허연우는 임금의 잠행 길에 데이트까지 하게 되는 귀한 행운도 얻었다.

  드라마 <동이>의 숙종 임금은 애인과 함께 주막집에서 술과 돼지껍질을 즐겼지만, <해를 품은 달>의 이훤은 훨씬 더 세련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훤은 연우와 함께 시장 땅바닥에 앉아서 <무수리의 첫 사랑>이라는 제목의 길거리 인형극을 관람했다. 주요 데이트 코스인 '뮤지컬'을 즐긴 것이다.

  그런데 이 공연은 공짜가 아니었다. 가까이서 관람하려면 돈을 내야 했다. 관람료는 1인당 5냥. 이훤은 잠행 중이라 수중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돈 잘 버는 연우가 대신 지불했다. 요즘 액받이 무녀로 잘 나가는 연우가 흔쾌히 돈을 냈던 것이다.  여성에게 데이트 비용을 부담시킨 게 미안했는지 아니면 돈을 못 내서 자존심이 상해서였는지, 이훤은 "꼭 갚을 테니 염려 말라"고 단단히 다짐했다. 그러나 연우는 "개의치 마십시오"라고 사양할 뿐이었다. 이훤이 "난 빚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라며 "저녁에 보자"고 재차 강조했지만, 연우는 여전히 돈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인형극 관람료가 5냥... 말이 되나?
연우와 이훤의 데이트 장면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들이 지불한 비용이다. 드라마 속의 연우는 마치 '껌값' 정도 쓴 듯한 태도였다. 그런 돈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그렇다면, 연우가 낸 돈 10냥은 정말 그렇게 '시원하게' 쏠 수 있는 돈이었을까?  <해를 품은 달>은 등장인물이나 줄거리는 100% 허구지만, 시대적 배경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이다. 드라마 속의 보수파 거두인 윤대형(김응수 분)이 사림파의 결집을 경계하는 것으로 볼 때, <해를 품은 달>은 성종 이후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절 조선에서는 주화란 것이 사용되지 않았다. 1장을 단위로 하는 저화란 지폐도 있었지만, 이것도 제대로 유통되지 않았다. 화폐로 사용된 것은 주로 직물이나 쌀이었다.그래서 시장에서 돈 10냥을 지불하고 뭔가를 구매하는 풍경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럼, 만약 <해를 품은 달>이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다면 어떨까? 주화인 상평통보가 본격적으로 유통된 17세기 후반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면, 1인당 5냥을 주고 인형극을 관람한다는 게 성립될 수 있을까? 경제사 학자인 김용만은 <조선시대 사노비 연구>에서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거래된 노비 151명의 몸값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노비는 일반적으로 5~20냥에 거래됐다. 이 돈이면 노비 본인과 그 자녀들을 대대로 고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주로 노비가 노동을 담당했다. 그러므로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자 1명을 평생 고용하는 데 그만한 돈이 들었던 셈이다. 10냥이란 돈, 얼마나 큰 돈인가!  경제학자인 이영훈과 박이택은 <농촌미곡시장과 전국적 시장통합, 1713~1937>이란 논문에서 경상도 경주의 쌀값 추이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쌀 1가마니의 평균 가격이 18세기 전반에는 0.8냥, 18세기 후반에는 0.9냥, 19세기 전반에는 1.1냥, 19세기 후반에는 2.9냥이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보면, 주화 10냥이 얼마나 큰 돈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 돈이면 값싼 노비 1명을 평생 부릴 수도 있었다. 또 시기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쌀을 몇 가마니나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조선시대의 쌀 1가마니는 오늘날과 달리 매우 비싼 물건이었다.  노비도 살 수 있고 쌀도 많이 살 수 있는 10냥. 그래서 웬만한 서민들한테는 '전 재산'이라고 할 수도 있는 10냥. 10냥의 가치가 조선 후기에도 이처럼 높았다면, <해를 품은 달>의 시대적 배경인 조선 전기에는 훨씬 더 높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드라마 속의 연우는 그런 거액을 그저 껌값 정도로 생각하고 '화끈하게' 시장에 뿌렸다. 그깟 돈 없어도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그것도 땅바닥에 앉아서 관람하는 공연을 위해 거액을 아낌없이 던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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