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산티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다. 그녀는 2000여 년 전의 사람이지만 요즘도 자주 회자된다. 소크라테스와 같이 학문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녀의 이름 앞에 세계 3대 악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진료실에서 가끔 그 옛날 크산티페가 환생한 것 같은 아내들을 만날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제 아내는 너무 거칠어요. 아내가 무섭습니다.” 결혼 2년차 J씨는 완전히 주눅 들어 있었다. J씨의 아내는 너무 강하다. 연애 시절엔 J씨 자신이 여리니 강하고 직설적인 아내에게 매력을 느꼈고 상호 보완될 것 같았다.

 그런데 신혼 초 회사 일로 파김치가 된 날 아내의 요구로 성관계를 하다가 발기력을 잃은 적이 있다. 아내는 남편이 바람 피워 그렇다며 몰아세웠다. 그때부터 아내는 아예 달력에 성행위 날을 표시한다. 남들은 일주일에 두 번 한다는데 왜 우리는 한 번이냐며 횟수가 줄 때마다 욕설을 퍼붓는다. 성행위 없이 2주를 넘기면 귀가 시 속옷까지 확인한다. 남편이 항의하자 심지어 남편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기도 했다.

 더구나 J씨는 매달 한 번씩 지옥 같은 날을 치른다. 바로 아내의 배란일이다. 남편을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아내는 임신을 고집한다. 애가 없으니 남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노와 의무감에 휩싸인 J씨의 발기력은 더욱 떨어졌다. 갈등 상태에서 2세를 갖느니 차라리 성행위에 실패해 아내에게 욕먹는 게 낫다는 마음까지 생겼다.

 J씨로부터 들은 아내의 성장 배경은 참으로 불행했다. 심한 애정 결핍과 부친의 잦은 외도로 불안했던 가정환경이 피해의식과 감정 기복을 만든 듯했다. J씨를 몇 차례 진료한 필자는 과연 그의 하소연이 모두 사실일까 일부 의심도 했다. 그러나 J씨의 아내가 나타난 날 진료 몇 분 만에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J씨가 처음으로 아내 앞에서 아내가 너무 무섭고 거친 언행이 싫다고 말하자, 성미 급한 J씨의 아내는 고성을 질러댔다.

 “네가 돈을 잘 벌어 오길 해, 누구처럼 외국 여행을 시켜 줘, 명품백을 사 줘 봤어? 남자 구실을 똑바로 해? 너 자신을 알아, 야, 이 ×××야!” 필자의 앞에서 남편에게 퍼부은 욕설은 차마 지면에 싣지 못하겠다. 전문가로서 아무리 아내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해도 그녀는 너무 심한 악처였고 치료가 필요한 불쌍한 환자였다.

 크산티페가 악처가 아니란 반론도 있다. 현명한 철학자인 남편이었지만 경제적 빈곤에 시달렸고, 가정을 돌보지 않고 철학적 논의에만 매달렸으니 지켜보는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남편의 강연장에 가서 오물을 퍼붓고, 물벼락을 안기고, 길거리에서 옷을 찢고 욕설을 퍼부은 것이 사실이었다면 이는 도를 넘어선 무례함이다.

 또 다른 반론 중에는 소크라테스가 죽었을 때 크산티페가 그렇게 슬피 울었다는 사실을 대며 남편을 사랑했었고, 그래서 악처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게 사랑의 눈물이었든 참회의 눈물이었든 무슨 소용인가. 있을 때 잘해야지 떠난 후엔 울어 봤자 아무 소용없다. 신체적인 것뿐 아니라 언어폭력, 정서적 학대도 엄연한 가정폭력이다.  대부분 착하고 좋은 아내들이지만 필자의 진료실엔 크산티페보다 못한 악처가 가끔 있다. 없으니만 못한 악처가 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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