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BS 수목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충격적 비밀이 공개됐다. 훈민정음 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가 책자 형태가 아니라 궁녀 소이였다는 것이다. 한 번 보면 뭐든지 기억한다는 소이의 머릿속에 훈민정음의 매뉴얼이 입력돼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소이 같은 기억력의 소유자가 그리 드물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흔한 편도 아니었지만, 수소문해서 찾으면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암기왕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이 전문적으로 정보를 보관하고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한 사례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한자 수백 개 문서를 쓱 보고 다 외운 한음
유명한 친구 사이인 오성 이항복(1556~ 1618년)과 한음 이덕형(1561~1613) 가운데 한음 이덕형도 기억력의 대가였다. 어우당 유몽인의 민담집인 <어우야담>에 따르면, 이덕형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접대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덕형의 관심은 단순히 접대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명나라의 군사정보를 캐내는 것이었다. 어느날 이덕형이 명나라 사령부를 방문하자, 이여송의 측근은 수백 개의 한자로 된 비밀서류를 잠깐 보여준 뒤에 얼른 빼앗았다. 대강의 분위기만 파악하라고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이덕형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명나라 진영에서 돌아온 이덕형은 머릿속에 스캔된 수백 개의 글자를 그대로 써서 선조 임금에게 제출했다. 나중에 조선 측이 또 다른 루트를 통해 그 문서를 확보해보니 이덕형의 보고서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고 <어우야담>은 전한다.

수십 명 동시 낭독, 사건을 정리한 김계휘
 조선시대 예학(예법)의 대가로서 송시열, 최명길 등을 제자로 둔 김장생이란 인물이 있었다. 유명한 암기왕이었던 그가 전라도 관찰사로 재직할 때의 일화가 <어우야담>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관찰사는 재판사무까지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소송서류들과 싸워야 했다. 그런데 김계휘가 소송사건을 파악하는 방식은 아주 독특했다. 수십 명의 아전들에게 수천 장의 서류를 동시에 낭독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진행된 수십 명의 낭독이 끝나면, 김계휘는 자신이 들은 것을 서류에 정리했다. 그가 수많은 소송사건들을 짧은 시간 내에 얼마나 잘 요약하는지 사람들이 다들 감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따금씩 그는 아전들의 낭독이 끝나자마자 “백성 아무개가 이중으로 소송을 제기했으니, 그 자를 처벌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아전들도 찾아내지 못한 이중 소송을 단번에 찾아냈던 것이다.

  김계휘는 떳떳하지 못한 목적을 위해서도 자신의 재주를 활용했다. 어느 날 그는 시장 상인을 불러 “특이한 책들을 읽고 싶다”며 “그런 책들이 있으면 사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러자 상인은 서점가에 가서 특이한 서적들을 대량으로 구한 뒤,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여러 대의 수레에 실어 김계휘에게 갖다 주었다.
 다음 날, 김계휘는 상인을 도로 불러 “책이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으니 도로 가져가라”며 책들을 되돌려주었다. 실은, 밤새 속독으로 다 읽었던 것이다. 그렇게 책들을 읽은 뒤에 주변 사람들에게 그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주었기 때문에, 그의 점잖지 못한 수법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선조들, 암기에 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옛날 사람들의 암기력이 탁월했던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서적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책을 베끼거나 암송하는 수밖에 없었다. 둘째, 반복학습과 암송을 통해 문리(文理)를 깨우치도록 하는 학습법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개인의 사회생활에 요구되는 정보량이 오늘날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살다 보니, 옛날 사람들의 암기력이나 기억력이 현대인들보다 훨씬 더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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