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비가 사회적 천대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시에,우리는 백정이 사회적 천대를 받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백정과 노비 중 어느 쪽이 더 천했을까? 양쪽 다 똑같이 천했을까? 아니면, 위아래가 있었을까? 이 애매한 문제를 정리해보자.  백정은 겉모습에서부터 일반인과 구별되었다. 그들은 거주지나 복장면에서 '하류인생'이었다. 그들은 집에 기와를 올릴 수 없었고, 몸에 갓이나 망건 등을 착용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의복에는 쇠가죽 털이 달렸기에, 길에서 보면 누가 일반인이고 누가 백정인지 금방 구분할 수 있었다.

  백정이 천시를 받은 것은 그들의 직업 때문이었다. 그들의 업이 사농공상(士農工商)처럼 공인된 직업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농업 생산에 가장 긴요한 가축인 소를 도축했으니, 농업사회에서는 이들이 천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법적로는 달랐다. 백정은 신분상으로는 버젓한 양인(良人), 즉 자유인이었다. 이에 비해, 노비는 외형상으로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노비의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했고, 상업이나 수공업에도 종사했다. 이익의 <성호사설> 7권에 따르면 노비 시인 백대붕처럼 문단에서 활약하는 선비 스타일의 노비도 적지 않았고,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사회적 존경을 받는 노비들도 있었다. 농공상(農工商)뿐만 아니라 사(士)를 업으로 하는 노비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노비는 농공상에 종사했다.   

  하지만,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간에, 이들은 법적으로 남에게 예속된 사람들이었다. 설령 서당에서 훈장 일을 하는 노비일지라도, 그는 정기적으로 주인을 찾아가 신공(공물)을 납부해야 했고 또 주인의 판단에 따라 매매나 상속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노비는 겉모습이나 직업이 천해서가 아니라, 법적으로 타인에게 예속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천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직업이나 옷차림, 주거지만 놓고 보면, 노비가 백정보다 더 나은 처지에 있었다. 법적으로는 백정이 나았지만, 현실적으로는 노비가 나았던 것이다.
 이렇게 법적 신분과 관계없이 직업적으로는 노비가 백정보다 우월했지만, 그렇다고 노비가 백정을 함부로 대할 수도 없었다. 노비가 백정을 하대할 수는 있었지만, 싸움이 나서 '치안센터'에 끌려갔을 경우에는 노비가 불리했다. 이런 경우, 국가는 백정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노비가 양인을 폭행한 경우에는 양인이 양인을 폭행한 경우보다 1등급 가중해서 처벌했다. 양인이 불구가 되거나 치료 불가능이 되면 노비를 교수형에 처했고, 양인이 죽은 경우에는 참수형에 처했다. 반면, 양인이 노비를 폭행한 경우에는 양인이 양인을 폭행한 경우보다 1등급 감해서 처벌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비와 백정이 싸울 경우에는 노비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법적으로는 백정도 양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노비는 백정을 하대하더라도, 주먹을 부를 만한 언행은 가급적 자제해야 했다.

 노비가 주인과의 관계에서는 물론이고 일반인과의 관계에서도 법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놓일 경우, 노비는 주인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야만 노비는 더욱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는 농업생산 및 조세수입의 증대를 위해 노비를 법적으로 차별했다. '백정이 천할까, 노비가 천할까'라는 이 애매한 문제를 간략히 정리해보자. 직업적으로는 백정이 천했다. 신분적으로는 노비가 천했다. 어느 쪽이 더 천한가는, 양쪽이 폭행에 휘말렸을 경우에 잘 나타났다. 이 경우 법은 백정의 편을 들었다. 그러므로 노비가 백정보다 더 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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