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렇다는데 이거 왜 이러십니까?” 성미 급한 C씨는 성의학 전문 의사에게 소리치기 급급했다. 아내의 오랜 설득에 겨우 진료실을 찾은 C씨. 술자리에서 가끔 성생활 얘기를 안주 삼는다는데, 친구들도 아내와는 성생활을 안 한다더라며 큰소리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섹스리스 남성들의 흔한 주장으로 확률상의 오류일 뿐이다. 한국엔 섹스리스 부부가 3분의 1에 해당될 만큼 많다 보니 유유상종,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며 합리화한다. 특히 이런 남성들은 혼외정사엔 멀쩡한 반응을 보인다며 자신은 문제가 없고 아내 문제라는 공통적 변명을 늘어놓는다.

 C씨는 그런 면에서 더더욱 최악이다. 치료를 거부하며 버티다가 마지못해 모처럼 성행위를 시도한 남편 C씨. 그의 성반응, 특히 발기반응이 부실했다. 며칠 후 C씨는 아내에게 뜬금없이 큰소리를 쳤다. 성매매업소를 다녀왔는데 거기서는 멀쩡했다며 감히 아내에게 자랑까지 했다는 게다. 그에겐 성매매라는 비난받을 사실보다 나는 문제없다는 자기방어가 더 중요했다.

 C씨처럼 구제불능인 환자를 치료할 때 전문의사들은 가장 힘이 든다고 한다. 치료의 가장 큰 걸림돌이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때다. C씨를 분석해 보면 말 그대로 ‘먹고 자고 일하는’ 것밖에 모르는 남자다. 그의 성장 스토리도 오로지 목표와 성공에만 몰입돼 있다. C씨에게 성생활은 편하고 즐겁고 쾌감에 친밀감과 유대감까지 얻는 훌륭한 인간관계란 개념은 전혀 없다. 성생활은 그저 일의 연장, 아내를 즐겁게 해 줘야 하는 또 다른 일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아내와 교감하면서 박자를 맞춰 서로 스킨십을 주고받는 게 귀찮다. 그런 C씨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성생활은 고작 성매매가 전부다. 성매매 때는 가만히 누워 서비스만 받으니 자연스러운 성행위와 점점 멀어진다. 더 이상 아내와의 성행위 시 흥이 안 난다. 흥이 안 나니 발기반응도 부실하다. 그런데 C씨는 이 모든 탓을 아내에게 투사할 뿐이다.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데, C씨에겐 그것이 전부다. 한마디로 삶의 또 다른 요소인 올바로 ‘즐기고 쉴 줄’ 모른다. 즐기고 쉬는 것 자체가 생존에 급급한 C씨에겐 애초에 없는 단어다. 그에게 성에 관한 즐거움은 고작 성매매를 통한 동물적 배설이 전부다. 또 휴식은 그저 주말에 잠만 퍼 자는 게 유일하다. 사실은 이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휴식이 바로 배우자와의 성생활이다. 성행위의 쾌감 이후 이어지는 충분한 이완현상은 훌륭한 휴식의 지름길이다.

 삶의 질에 있어서도 ‘먹고 자고 일하는’ 3박자가 아니라 거기에 ‘즐기고 쉬는 것’을 보태 5박자가 맞아야 행복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C씨는 그동안 경쟁과 생존 위주의 3박자에만 치중했던 우리 문화나 교육방식의 불행한 산물인 셈이다. 소중한 대상과 적절한 친밀감을 갖는 인간관계의 교육이 빠진 것이다. 적어도 생존에 급급했던 시절은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삶의 질에 비중을 맞춰야 할 시대다. 부부 사이의 안정적인 인간관계와 이에 이어지는 적절한 성생활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다. 배우자와의 성생활이 원만한 사람이 스트레스도 덜 받고, 건강하며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는 수없이 반복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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