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 가문에게 있어서 수양대군(세조)은 '하늘에까지 사무칠 원한을 심어준 원수'라는 의미의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란 표현이 가장 잘 들어맞는다. 수양대군이 일으킨 쿠데타인 계유정난에 의해 김종서뿐만 아니라 그 자손들까지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 가문의 족보인 <순천 김씨 대동보>에 따르면, 김종서는 승규, 승벽, 승유, 석대, 목대 등 다섯명의 아들을 두었다.의 뒤의 둘은 서자이고, 나머지는 적자이다.

 족보를 열어 보면, 계유정난의 재앙이 이 집안을 무참히 짓밟고 간 흔적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김종서의 다섯 아들 중에서 승유를 제외한 전부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승규, 승벽의 최후는 <단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단종실록>에 따르면, 장남 승규는 사건 당일 아버지와 같은 장소에서 죽임을 당했다. 1453년 10월 10일 밤에 수양대군이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김종서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김승규는 문 앞에 앉아 다른 두 명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수양대군은 그에게 아버지를 좀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연락을 받고 한참만에야 나온 김종서는 수양대군에게 집 안으로 들어가자고 권했다. 하지만, 수양대군은 날이 저물었다면서 그냥 문 밖에서 이야기하고 가겠다고 말했다. 몇 마디의 대화가 오고간 뒤에 수양대군은 청탁할 것이 있다면서 김종서에게 편지를 건넸다. 수양대군을 경계한 김종서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편지를 펼쳐보았다.

 김종서는 밤중이라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서, 고개를 숙여 달빛에 비춰 가며 편지를 읽었다. 그의 시선이 편지에 고정되자,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수양대군의 수하가 김종서에게 쇠몽둥이를 내리쳤다. 불의의 공격에 아버지가 쓰러지자, 놀란 김승규는 얼른 달려들어 아버지의 몸에 엎드렸다. 그러자 수양대군의 또 다른 수하가 칼을 뽑아 김승규에게 내리쳤다. 이렇게 김승규는 아버지를 자기 몸으로 감싼 상태에서 목숨을 잃었다. 일을 마친 수양대군은 말에 올라타 유유히 돌아갔다.

 수양대군 측은 곧바로 김종서의 다른 아들들을 찾아 나섰다. 김종서가 먼저 내란을 일으켰다고 선언한 수양대군 측은, 김종서의 아들들 역시 역모에 가담했다면서 그들에 대한 체포작업에 돌입했다.   6일 만인 음력 10월 16일(11.16), 수양대군 측은 차남 김승벽의 소재를 파악했다. 제보를 받은 수양대군 측은 경기, 충청 지역을 전전하던 김승벽을 잡아들였다. 수양대군 측은 증거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에게 내란 공모죄를 씌워 사형에 처했다.

  김승유를 제외한 두 명의 적자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한편, 서자인 석대, 목대의 경우는 그들이 계유정난 때 사망했다는 점만 알 수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수양대군의 칼날은 김종서의 아들들뿐만 아니라 손자들까지 겨냥했다. 김승규의 세 아들 중 2명, 김승벽의 네 아들 중 3명이 계유정난으로 목숨을 잃었다. 유독 김승유 부자만큼은 화를 모면했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서도 수양대군 자손과 김종서 자손 사이에서 줄리엣과 로미오가 나왔다고 하니, 이보다 더 기이하고 드라마틱한 한 일도 없을 것이다. 조선 후기 서유영의 민담집인 <금계필담>에 따르면, 계유정난 직후에 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가 결혼을 했다고 한다.

  <금계필담>의 이야기가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면, 승규, 승벽, 승유, 석대, 목대 중 어느 쪽에서 '로미오'가 나왔을까? 혹시 <공주의 남자> 속의 김승유의 아들인 김효달이 그 주인공은 아닐까? 그러나 계유정난 당시 김효달은 친척의 등에 업혀 난을 피했을 만큼 아직 어린아이였다. 반면 <금계필담>에서는 '로미오'가 계유정난 직후에 쌀을 짊어지고 다닐 정도의 청년이었다고 했다. 또 <금계필담>의 로미오는 자기 아버지가 계유정난 때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김승유는 목숨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아들이 '로미오'였을 리는 없다. 이런 점들을 본다면, 승유를 제외하고 승규, 승벽, 석대, 목대의 장성한 아들 중 하나가 로미오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석대, 목대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적어도 족보상으로는 그렇다. 사망자 중에서 아들을 둔 사람은 승규와 승벽이다. 승규의 아들 1명과 승벽의 아들 1명이 계유정난 때 화를 모면했다고 했으므로, 그중 한 명이 <금계필담> 속의 로미오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승유의 조카 중 1명이 '철천지원수'의 딸과 결혼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김승유는 <금계필담> 속의 '줄리엣'과 숙부와 조카며느리(질부)의 관계니, 드라마에서는 숙부와 조카며느리가 연애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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