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은 조선시대 임금 중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엾은 이로 기억되고 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왕위에 올라 삼촌에게 왕위도 빼앗기고 목숨까지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종 못지않게 기구한 운명을 겪은 사람이 있다. KBS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홍수현 분)가 그 주인공이다. 단종처럼 살해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그의 생도 한없이 불쌍하고 가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이승소의 시문집 <삼탄선생집>에 수록된 경혜공주 묘지(墓誌)에 따르면, 공주는 제4대 세종이 재위할 때인 1435년에 세자 이향(훗날의 문종)과 권씨(훗날의 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왕이 아닌 세자인 데다가 어머니가 세자의 첩이었기 때문에, 출생 당시의 경혜공주는 공주가 아니었다. 그러나 3세때, 어머니가 세자빈으로 승격됨에 따라 그는 동궁전 즉 세자의 처소인 경복궁 자선당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세종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15세부터 그의 삶은 꼬이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어도 세종의 건강이 호전되지 않자, 왕실에서는 16세된 공주 (당시는 평창군주)의 혼사를 서둘렀다. 세종이 사망할 경우 삼년상 기간은 혼인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될 경우 공주는 18세 이후에나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왕실에서는 보통 10대 초반에 결혼했기 때문에, 18세는 상당히 늦은 나이였다.

 왕실에서 급히 얻은 배우자는 전 한성부윤(현 서울시장) 정충경의 아들인 정종(鄭悰)이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공주와 정종은 세종 32년 1월 24일(1450.2.6)에 결혼했다. 이때 공주는 16세였다.  그런데 신혼부부가 살림집을 차리기도 전인 세종 32년 2월 17일(1450.3.30)에 세종이 그만 눈을 감았다. 결혼한 지 52일 만에 할아버지가 사망했으니, 살림집 준비는 일단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공주의 불운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삼년상을 끝내고 한 달 뒤에 아버지 문종마저 세상을 뜬 것이다. 이때 공주의 나이 18세였다.

 불운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삼년상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숙부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이 쿠데타 계유정난(1453)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로써 동생인 단종은 허수아비 임금으로 전락했다. 이때 공주는 19세였다.   2년 뒤인 21세 때에, 수양대군이 임금이 되고 단종은 상왕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남편인 정종은 단종을 감싸고 도는 금성대군(수양대군의 동생)과 친했다는 이유로 강원도 영월로 귀양을 가야했다. 이후 정종의 유배지는 영월에서 경기도 양근, 한성, 수원 및 김포로 변경됐다. 유배지가 수원으로 바뀐 뒤부터는 공주도 그를 동행했다.

 세조 집권 뒤에 단종의 복위를 꾀한 사육신 사건(1456)이 발생했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간 이 사건으로 인해 단종은 상왕에서 왕자 급인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를 가고, 정종은 전라도 광주로 귀양지가 바뀌게 되었다. 동생 단종은 이듬해에 죽고 남편 정종은 단종이 죽은 후 4년 뒤에 시신을 토막 내는 능지처참에 처해졌다. 이때 공주는 27세였다. 그는 남편이 죽은 뒤에 전라도 순천부의 노비로 떨어졌다. 일국의 공주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전락한 것이다. 당시 그에게는 여섯 살짜리 아들 정미수와 뱃속에 있는 딸이 있었다. 만삭의 몸으로 아들의 손을 잡고 그는 노비가 되러 순천으로 떠났다.

  순천부사(순천시장) 여자신이 진짜로 일을 시키려 하자, 공주가 동헌(수령 집무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으면서 "나는 왕의 딸이다. 죄가 있어서 귀양을 왔지만, 수령이 어찌 감히 내게 노비의 일을 시킨단 말이냐?"며 호통을 친 일화가 <연려실기술>에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임신하고 애 딸린 공주한테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여론을 우려한 수양대군(당시는 세조)은 공주를 사면하고 한성으로 불러 올렸다.

  한성으로 돌아온 공주는 두 아이를 왕궁에 맡기고, 자신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남편 잃은 후궁을 포함한 왕실 여인들이 여생을 보내는 비구니 사찰이 한성에 몇 군데 있었다. 그는 그곳 어딘가에서 13년간 여생을 보내다가, 수양대군의 손자인 성종이 재위할 때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40세였다.  공주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왕실의 비극 속에서 그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인간으로서의 삶, 여성으로서의 삶을 다 포기한 채 한과 설움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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