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땅 즉 경상도 땅을 떼어 일본에 갖다 붙인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친일매국노들은 아니다. 그들은 고대 한국인들의 역동성을 증명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시로는 미개척지인 고대 일본의 개척에 참여한 자랑스러운 해외 이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신라 땅을 떼어 일본에 갖다 붙인, 이 역동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일본에 전해지고 있다. 서기733년, 출운국(이즈모)이란 지방의 자연과 문화를 정리한 <출운국 풍토기>가 발간됐다. 이 책에는 대대로 이즈모 지방에 전해지던 민간 신화들도 수록되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국토 끌어당기기 신화’였다. 이 신화는 712년에 완성된 <고사기>나 720년경에 완성된 <일본서기> 같은 관찬 역사서에는 나오지 않은 이야기였다.
국토 끌어당기기 신화는 이즈모 지역의 형성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러 나라나 지역의 남는 땅을 끌어다가 이즈모 땅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일을 주도한 것은 야쓰카미즈오미쓰노미고토(八束水臣津野命)라는 거인이었다.

 이름이 너무 길어서 그냥 ‘거인’이라 부르는 게 편한 이 거인이 그런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즈모가 너무 좁기 때문이었다. 비좁은 이즈모 땅을 넓히기 위해 그는 여기저기서 남는 땅을 끌어 모으기로 결심했다. 거인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땅이 남는 나라나 지역이 어디인지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가 주목한 곳은 시라기, 사키국, 누나미국, 쓰쓰라는 곳이었다. 그는 흙을 파헤칠 때에 쓰는 도구인 가래를 들어 시라기, 사키국, 누나미국, 쓰쓰의 남는 땅에 쿡 찔렀다. 거인은 가래에 걸린 땅을 떼어낸 다음에 땅 조각을 밧줄에 걸어서 천천히 끌어당겼다. 그러면서 그는 “땅이여, 오너라! 땅이여, 오너라!”라고 외쳤다. 이렇게 해서 시라기가 가장 먼저 이즈모 땅의 일부가 되고 뒤이어 사키국, 누나미국, 쓰쓰가 합류했다는 것이 이 신화의 결론이다.

  여기서 이즈모 땅에 가장 먼저 합류한 시라기(志羅紀)라는 지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라기의 정체에 관한 한일 학계의 의견은 통일되어 있다. 시라기가 신라를 지칭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는 것이다. 신라를 떼어내어 이즈모에 갖다 붙였다는 것이, 문자 그대로 신라 땅을 실제로 떼어내어 일본 서해안에 갖다 붙였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신화학자 김화경은, 이 신화는 신라인들이 고대 이즈모의 건설에 참여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해석했다. 이 신화가 고대 한국인들의 일본 개척사를 반영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화 속의 ‘신라 땅’은 ‘신라 출신 이민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또 “이즈모 땅이 비좁다”는 거인의 말은 ‘이즈모를 개척할 사람들이 적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김화경은 이 신화를 만들어낸 것도 신라 출신 이민자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럼, 일본 학자들은 이 신화를 어떻게 해석할까? 시라기가 신라를 의미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본 학자들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 신화가 신라와 이즈모의 교류를 반영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시하타 다다시란 학자는 이 신화가 두 지역의 교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신라와 이즈모 사이에 아무런 교류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 같은 신화가 나올 수 있었을까? 이시하타 다다시의 견해는 이런 의문에 대해 만족할 만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국토 끌어당기기 신화는 신라와 이즈모 사이에 교류가 있었으며 그런 교류를 배경으로 당시로써는 미개척지였던 이즈모의 건설에 신라인들이 참여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는 이 신화를 이해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만약 신라인들이 이즈모를 건설했다는 내용이 신화가 아닌 역사기록을 통해 전달되었다면, 그런 내용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런 기록은 일본의 정치권력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는 전설, 설화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대중의 입을 통해 기록되고 뇌리에 기록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의 경우에는 정치권력의 입김이 상대적으로 적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신화가 역사보다 ‘유통기한’이 더 길고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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