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여성이 해방됐다!”
 1960년 경구피임약의 출현은 임신의 공포에서 자유로운 성생활로 이끈 혁명적 사건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음핵 오르가슴을 강조한 마스터즈와 존슨 팀의 성의학 연구로 여성의 성적 만족에 반드시 남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개념까지 득세했다. 음핵 역할론과 경구피임약은 60년대 여성해방운동의 불을 지핀 일등 공신이었다. 적어도 피임이라는 현실적 효과와 편리성에서 경구피임약은 상당히 우수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인체의 자연스러운 호르몬계를 교란하고, 장기 복용에 따라 유방암이나 혈전증, 심장병의 위험을 키운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피임약의 혈전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특히 ‘드로스피레논(drospirenone)’이 함유된 피임약의 경우 혈전 위험성이 2~3배나 높다고 확인했다.

섹시함 깍아먹는 피임약

 그러나 그 어떤 부작용보다 피임약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성문제다. 과거 여러 연구에서 꾸준히 밝혀져 왔듯, 피임약에 따른 호르몬계 교란은 성욕저하, 분비저하, 성교통 등 성기능에 여러모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이런 경우 약만 끊으면 성기능이 회복될 거라고 여겼었다. 2005년 하버드대와 보스턴대의 공동연구에서 피임약을 끊어도 호르몬계의 교란은 회복되지 못하고 부작용이 지속될 수 있음이 처음 밝혀졌었다. 또한 성문제 관련 연구팀은 여성 성교통의 절반을 차지하는 ‘전정염’이 호르몬의 불균형과 연관되며, 그 배경엔 피임약도 관련됨을 확인했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피임약이 이성 간의 짝짓기와 성적 매력에 방해요소가 된다는 연구들이다. 이성 간의 끌림은 상당 부분이 심리적 요소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화학반응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데 이런 화학반응이 호르몬제제 피임약에 의해 억제될 수 있다.

 흔히 여성은 배란기에 더욱 남성성이 강한 존재에게 끌리거나, 자신의 면역체계 유전자(MHC)와 가장 다른 유전자를 가진 남성을 본능적으로 선호하여 유전적으로 면역기능이 강한 2세를 갖게 된다. 그런데 피임약을 사용한 여성에게서 그런 성향이 더 이상 관찰되지 않았다. 여성은 생리주기에 따라 체취가 달라지고, 배란기에 성적 매력과 성적 욕구가 화학적 신호를 통해 본능적으로 남성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경구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의 경우 남성들이 그런 성적 매력을 느끼는 데 제한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피임약을 사용하는 여성의 경우 화학적 신호를 더 이상 보낼 수 없어서라고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자연섭리 거스리면 반드시 치루어야 하는 대가

 듀크 대학에서 이뤄진 동물 실험에서도 짝짓기 선호도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연구는 피임약제제 사용 전후에 암컷 여우원숭이가 분비한 호르몬을 비교하고 수컷의 선호도를 분석했다. 그런데 피임주사제제인 데포-프로베라(Depo-Provera) 사용 후 암컷이 분비하는 화학물질이 현저하게 달라졌다. 또한 피임약을 맞은 암컷에게 수컷들이 느끼는 성적 호감이 피임약 사용 전에 비해 떨어졌던 것이다.  피임의 효과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피임약. 그러나 너무 인공적인 방법으로 내 몸의 자연 섭리를 뒤집어 놓으면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 특히 성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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