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교회 담임 임동섭 목사

교회를 시작할 때에 미국교회 목사님께 새벽예배를 위해 건물을 쓸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미국 목사님은 대단히 놀라셨습니다. 미국 성도님들에게 저의 가족을 소개하실 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새벽 5시에 예배를 드린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첫 주일 예배에 한 분이 나오셨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말씀이 실감났습니다. 그러나 새벽예배에 나오는 분은 없었습니다. 매일 2시간 이상 새벽예배를 위한 설교를 준비하지만 정작 설교를 듣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자 새벽예배를 교회에서 계속 드릴 것인지 그냥 집에서 드릴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새벽예배를 드리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질 때 미국교회 성도님 부부가 새벽에 나오셨습니다.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시지만 예배가 끝날 때까지 앉아 계시다가 개인기도 시간에 본당으로 가셨습니다. 그 다음 날 새벽에도 나오셨습니다. 저는 집에서 새벽예배를 드린다는 생각을 접었습니다. 더욱 열심히 새벽예배를 위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비록 미국 성도님들이 알아듣지 못하지만 정성은 그대로 전달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후로 나오시지 않았습니다.

  몇 개월이 또 흘렀습니다. 새벽예배를 집에서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번 주까지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다음 주부터 집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겠다고 아내와 잠정적으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교회에 다니시는 미국 여자 성도님이 나오셨습니다. 이 분도 역시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만 예배가 끝날 때까지 있다가 개인기도 시간에 본당에서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언제 다시 이 성도님이 교회에 나올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몇 개월이 또 흘렀습니다. 아내 한 사람 앞에서 새벽예배 설교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해보신 분만이 알 것입니다. 저는 다시 새벽예배를 집에서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 청년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새벽예배에 참석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목회자가 되고 싶은 이 청년에게 목회에 관해 많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특히 그 청년에게 설교를 준비해서 우리 부부 앞에서 설교도 해보도록 기회도 주었습니다. 이 청년은 타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약 2달 정도 새벽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몇 개월이 또 흘렀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 중에서는 한 분도 새벽예배에 나오시지 않았습니다. 이제 정말 새벽예배는 그만 두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기는 이웃교회 집사인데 자기가 섬기는 교회는 새벽예배가 6시에 시작하고 사업장으로부터 멀어서 포근한 교회의 5시 새벽예배를 드리면 새벽예배도 계속 드릴 수 있고 사업에도 지장이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사님과 새벽예배를 교회에서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3주쯤 나오신 후 아무 연락도 없이 나오시지 않았습니다. 이웃교회 집사님에게 왜 나오시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새벽예배를 집에서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몇 개월이 또 흘렀습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 새벽예배는 그만 두려고 마음속에 작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일예배 후에 새로 나오신 성도님 가족이 새벽예배에 참석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성도님 가족을 통해 하나님께서 새벽예배는 계속하라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이 가족은 8개월 정도 온 가족이 참석하셨습니다.

  제가 새벽예배를 그만 두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을 계속 보내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벽예배를 통해 저희들과 대화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참석하시는 성도님들의 숫자에 상관없이 일대일로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신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새벽에 성도님을 보내시지 않아도 계속 새벽예배 드린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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