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나의 길’

 

12살이던 1975년부터 태권도를 배워온 이 관장은 13살에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이후에도 꾸준히 태권도에 매진해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태권도 종목 미국 국가대표로 참가해 동메달을 획득했고, 1992년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팀 주장, 1993년부터 2003년까지는 올림픽 미 국가대표 선수단 코치로 활약했을 만큼 탄탄한 이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위치한 올림픽 선수촌에서 코치로 활동하면서, 올림픽 메달 지상주의라는 환경 속에서 코치라는 위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선수들이 메달을 걸지 못하면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는 위치가 코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지속적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고 싶다는 열정으로 캐슬락에서 태권도 학원을 열었다.

그러나 올림픽 선수단 코치와 학원 운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벽 6시부터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올림픽 선수촌에서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임무는 오후 4시 30분이 되어야 끝났다. 그러면 다시 차를 몰고 캐슬락으로 가서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또, 주말이 되면 선수단을 이끌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당시 4살이던 딸아이의 자는 모습만 볼 수 밖에 없었고, 어린 딸 역시 아빠와 시간을 보낼 기회가 없었던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느 주말 모처럼 집에서 쉬고 있는 아빠에게 딸이 의아한 표정으로, “아빠, 오늘은 왜 집에 있어?”라고 한 일은 아직도 이 관장의 뇌리에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관장은 지난 4년간 캐슬락 지역 초등학교 여러 곳에 36,000달러 이상의 금액을 기부했다. 또, 아동병원에도 올해 26,000달러를 기부하는 등 지역사회 봉사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에 대해“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미국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받은 것을 되돌려주고 나누는 것이 생활화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관장은 태권도를 아이들이 배우면 좋은 점에 대해서“태권도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어른들을 공경하고 자신감을 키워주는데 있어서 훌륭한 역할을 한다. ‘나는 할 수 있다(Yes, I can)’라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성공의 지름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단, 캐슬락에 위치한 태권도장에 들어서면 규모에 놀라고, 엄격하면서도 절도 있는 분위기에 다시 한번 놀라는 이유도 이러한 무도인의 정신이 깔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 이 관장은 한국인들이 한국의 전통 무술인 태권도를 무시하고 나아가 태권도 사범까지 무시하는 경향에 대해 서운함을 표하며,“좀더 태권도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관장은 자신이 이민 1.5세로서 정체성 문제로 혼란을 겪은 경험자이기 때문에 한인 2세들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공부만을 강조하는 한국인 부모의 밑에서 엄청난 부담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는 잘하지만 인성 교육은 실패한 2세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태권도를 통해 이를 극복해낸 이 관장은 한인 부모들에게 인생의 성공을 위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자녀를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시키기 위한 균형도 꼭 찾아줄 것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이 관장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가 가장 잘하고 가장 사랑하는 일을 할 것이다. 더 많은 태권도 학원을 열어 미국 사회에 태권도의 정신을 전파할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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