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이들은 15살이 넘어가게 되면 조금씩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이가 꼭 15세가 넘어야 알바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여섯 살짜리도 돈을 버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어린 아이들은 귀여움을 무기로 집 앞에 작은 테이블을 하나 내놓고 직접 만든 레모네이드를 한 잔에 500원 정도 받고 판다. 가끔 부모가 집 청소를 하면서 각종 잡동사니들을 모아서 차고 앞에 내놓고 파는 거라지 세일에서 싫증난 장난감을 팔아서 푼돈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아르바이트 종류는 어린 아이를 돌봐주는 베이비 시터, 잔디 깎기, 잡초 뽑기, 이웃 사람이 여행을 가 있는 동안 애완동물이나 집을 돌봐주는 펫 시터나 하우스 시터 등이다. 우리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15살 때 큰딸 세네카에게 들어온 첫 알바는 우리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어느 젊은 부부의 아기를 돌봐주는 일이었다.

      에비라는 이름의 이 아기는 당시 2살이 채 안된 어린 아기였는데, 얼마나 순한지 저런 아이라면 열 명도 키우겠다 싶을 정도로 순둥이였다. 이 부부는 밤에 오붓하게 외식하거나 데이트를 하고 싶을 때, 친구나 친척 결혼식 때문에 베이비 시터가 필요할 때 세네카를 가끔 불렀다. 보통 6시 정도에 가서 순둥순둥한 에비랑 조금 놀아주다가 7시 반 정도면 잠을 재우면 되고 나머지는 그냥 소파에 앉아서 부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 되었다. 그 동안에 냉장고에서 마음대로 음료나 간식을 꺼내 먹거나, TV로 영화를 보거나 휴대전화를 하면서 놀았다. 밤 10시쯤에 돌아온 에비네 부모는 세네카를 다시 차에 태워서 우리집까지 데려다주었고, 두둑한 팁을 주어 보통 저렇게 하루 4시간 정도 베이비 시터 일을 하면 60달러를 벌어왔다. 꼴랑 한 시간 반 아이 봐주고 60달러를 벌어오니 완전 꿀 알바가 아닐 수 없었다.

      둘째 엘리에게도 첫 알바 제의가 들어왔다. 우리 동네에 새로 이사 온 가족이 휴가를 가는 6일간 그 집의 개 한마리와 고양이 두마리의 밥과 물을 챙겨주는 일이었다. 아침저녁으로 그 집에 가서 개와 고양이를 집 앞 마당에 내놓고 밥과 물이 충분한지를 확인하고 저녁에 다시 집안에 들여 보내주면 된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하루 일당으로 10달러를 줬다. 아침저녁으로 들락거려야 하는데 10달러면 너무 적다 싶은데 엘리는 괜찮단다. 그래서 경험 삼아 한번 해보라고 했는데, 엘리는 기특하게도 알아서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일찍 학교 가기 전에 그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을 하고 다시 저녁에 가서 동물들을 집 안에 넣어놓고 집으로 돌아오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엘리가 그 집에 가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30분이 지나도 아이가 오지 않자 나는 걱정이 되어서 세네카와 함께 그 집을 찾아갔다. 엘리가 돌봐줘야 하는 '댈러스'라는 개가 마구 짖으며 달려왔다. 세네카가 댈러스의 이름을 부르며 살살 쓰다듬자 덩치만 컸지 아직 강아지였던 댈러스는 금새 애교를 부려댔다. 두 마리의 고양이 '스타'와 '오레오' 역시 귀여움이 과하게 넘쳐흘렀다. 엘리는 이 세 마리의 동물들에 흠뻑 빠져서 얘네들하고 논다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애교쟁이 이 세 마리 동물들에게 홀라당 넘어간 우리도 그 다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엘리랑 같이 가서 엘리가 일을 하는 동안 동물들과 함께 놀아주곤 했다.

     그러다  지난 여름 방학을 맞아 세네카가 우리집에서 자동차로 15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포키 레스토랑에서 또 다른 알바를 구했다. 세네카는 이곳에서 방학 동안 1주일에 이틀, 6시간씩을 일하기로 했다. 세네카는 일도 재미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좋다며 만족해했다. 세네카의 시급은 콜로라도의 최저 시급인 $11.10보다 조금 높은 $11.50 수준이었다. 그래도 일하는데 재미를 붙여 일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이더니 두 달 동안 1,000달러 넘게 벌어와서 세네카의 은행 잔고는 매우 두둑해졌다. 세네카는 이곳에서 방학 동안 딱 두 달을 일한 후 그만두었다. 11학년이 되니 슬슬 대입 준비도 해야 하고, 세네카 출퇴근 시켜주는 것도 힘들어서 이제 그만 하라고 했다. 세네카는 서운해했지만 알바가 주가 될 수 없다는 데 동의하고 알바를 그만뒀다.

    그러나 세네카의 친구들은 여전히 일을 한다. 새라는 텍사스 로드 하우스라는 레스토랑에서 손님이 들어오면 손님을 좌석까지 안내하는 일을 한다. 엠마는 프레디스라는 햄버거집에서 알바를 한다. 햄버거를 만들고, 감자를 튀기고, 필요하면 홀 테이블도 닦아야 한다.  브리아나는 분닥스라는 실내 놀이공원에서 생일파티를 전담하는 파티 호스트로 일을 하고, 엘라는 동네 체조학원에서 코치로 일하며 코흘리개 아이들에게 체조를 가르치고 있다. 사바나는 동네 그로서리 매장에서 일을 하며 손님이 쇼핑한 식료품을 주차장까지 날라다주거나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품들을 챙겨서 주차장에서 손님과 접선해 물건을 인계해준다. 또 그레이스는 동물 호텔에서 일을 하며 동물을 돌보고 우리에서 오물을 치워주는 일을 한다. 애슐리는 실내 수영장에서 안전요원으로 일을 해온 지 꽤 오래됐다.

    어쨌든 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세네카는 백수로 전락했다. 사실 돈을 못 번다뿐이지, 학생이라는 엄연한 직업군에 포함되어 있긴 하다. 나는 세네카에게 강조했다. "저런 곳에서 푼돈 받고 일하는데 목숨 걸지마, 세네카.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제대로 해서 장학금 몇만 달러씩 받고 니가 원하는 대학을 가면 그게 더 돈 버는 거야. 내가 너 등록금 꼬박꼬박 다 무상으로 대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그거 다 부채야. 연이율 확실하게 고리로 쳐서 끝까지 받아낼 테니까 졸업과 함께 빚더미에 앉기 싫으면 공부 제대로 하는 것이 좋을 거야. 알았어?" 하지만 세네카는 여름 방학 동안의 알바를 통해서 푼돈이라도 자기 힘으로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지를 깨달았다. 통장에 한푼두푼 쌓이는 돈을 보면서 부자가 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도 스스로 깨달았다. 얼마 안 되는 최저시급이라도 저런 경험을 통해 사회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미리 맛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세네카의 알바는 그 가치를 충분히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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