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신스틸러’(주연보다 더 시선을 사로잡는 조연)라는 단어가 어울릴 수 있을까. 최근 종영한 JTBC ‘이태원 클라쓰’에서 악역 장근원 역을 맡은 배우 안보현(32) 얘기다. 드라마에선 주먹깨나 쓸 것처럼 보였고 눈은 독기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았지만, 최근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평소 생각이 많았던 듯 막힘 없이 줄줄 답변을 내놨다. 최고 시청률 16.5%로 JTBC 역대 드라마 중 2위를 차지한 ‘이태원 클라쓰’는 장근원이 이야기 전개상 11∼12회에서 잠시 퇴장했을 때 시청률이 하락하기도 했다.  안보현은 장근원 캐릭터를 위해 보이는 것들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악역다운 악행을 표현하는 방식뿐 아니라, 악역이 주인공에게 된통 당할 때 느껴지는 ‘통쾌함’을 주려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까지도 그의 계산의 산물이었다고 한다.

    “많이 고민했어요. 그냥 원작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장근원에 대한 서사를 가미하면서 스타일링이나 톤으로 악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악행 연기를 많이 봤는데, 실성하고 웃어버리는 조커처럼 악함을 웃음으로 표현하는 법도 고민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극 중에서 박새로이(박서준)를 때려본 적이 없거든요. 외적으론 강해 보이는데 새로이한테 당하게 되면 시청자들이 보기에 좋지 않을까, ‘장근원은 모지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것도 고려했습니다.” 그는 극 초반엔 수트를 입은 채로 꽉 찬 느낌을 주고 싶어서 운동으로 몸집을 불렸고, 이후부턴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날렵해 보이는 스타일로 각성 전후 모습에 변화를 줬다고 덧붙였다.

    10회에서 장근원이 아버지 장대희(유재명) 회장으로부터 버림받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명장면으로 꼽힌다. 안보현은 “극 초반 닭 모가지 비트는 장면과 함께 어마어마한 부담이 됐던 신”이라며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어했던 근원이 캐릭터가 아주 잘 살았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7개월간 감정을 이입해본 결과 장근원은 안타까운 면이 많은 캐릭터였어요.” 복싱 선수에서 모델로, 모델에서 배우로 정착한 그는 ‘얘가 걔야?’라는 반응이 제일 좋다고 했다.  “나중에 ‘이태원 클라쓰’보다 더 큰 작품을 하더라도 장근원만큼은 제 ‘최애’(가장 좋아하는 것)가 아닐까 해요.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데 제가 아는 선에선 모두가 만족했던 캐릭터 같아서요. 악역인데 어떻게 이렇게 욕을 들어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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